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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술이 안되는 이유 - 배영순 교수  
--- 사무국 --- 4579
글쓴날짜 : 2006-01-26
<방하 한생각>논술이 안되는 이유
[문화일보 2006-01-20 14:11]

1.논술이 어렵다고 한다.
문제를 보니 ‘앞이 캄캄하다’고 한다.학생들도 그렇고 교사들도 난감해한다.그래서 논술에 대한 논란도 많다.그러나 논술고사는 대세가 되어 있고어쩌면 입시의 승패를 좌우하는 관건이 될지 모른다.그러니 수험생들로서는 이에 대한 준비가 불가피하다.
주변의 몇몇 교수들과도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는데실제 학생들이 써낼 수 있는 답안은70점을 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논술이 왜 어려운 것일까?왜 논술이 안 되는 것일까?이점에 대해서 몇 가지를 짚어보자.

2.첫째, 책을 읽는 훈련이 워낙 안 되어 있다.
요즘 학생들의 경우,문화적 생리자체가 ‘읽는 문화’가 없다. 보는 문화만 있다.TV를 보고 스포츠 중계를 보고 게임의 동영상을 보고교사의 판서를 본다.교과서도 읽는 것이 아니라 보는 개념이다.말하자면 스스로 생각하고 따지고 판단하지 않고눈에 비치는 대로 보고 머리에 입력할 뿐이다.생각 없이 보는 것을 좋아하지생각하고 따지는 것은 질색이다.생각하면 읽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주어진 정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면‘혼자서 생각한다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족집게 교육이 환영을 받는다.학생들 스스로 생각할 여지없이교사들이 잘 씹어서 학생들의 입에 밀어 넣기 때문이다.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여지를 없애주는 것,그것이 족집게 교육의 실력(?)인 것이다.

그러나 논술이라는 것은 어떻든 생각을 요하고 판단을 요한다.시비를 따지는 것을 요구한다.생각 없이 공부했는데 생각을 요하고 판단을 요구하니까벽에 부딪치는 것이다.사고의 자생력이 무너지는 공부를 하다가갑자기 사고를 요하니까 문제를 보고 일거에 무너진다.

사실 대학의 공부라는 것은 ‘보는 문화’로서는 대처가 어렵다.

스스로 생각할 수 없이는 판단하고 따지는 능력이 없이는지식정보의 앵무새가 될 뿐이지지식정보를 가공하고 창출할 수 있는 인재가 될 수 없다.대학에서 논술고사를 등장시키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그것이다.

단순히 입시의 변별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3.논술지도를 해 본 교사들은 잘 아는 바이지만 논술은 글쓰기 요령이나 논리적 감각의 훈련으로 대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정한 독서, 인문사회적 교양독서를 요구한다.그것도 사전적인 교양이 아니라 일정한 비판감각을 요한다.그렇지 않으면 주제 파악자체가 어렵고주제파악이 어렵다면 논술은 불가능하다.

대학에서 출제한 논술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적어도 30개, 많으면 50개 정도의 주제를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인간적 삶의 문제,인간적 사회를 향한 가치판단의 건강성과군형적 감각을 요하는 문제들이다.

예컨대 이런 문제들이다.세계화와 그 그늘에 대한 비판 / 현대 기술문명에 대한 비판 / 시장논리와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 / 인간관계의 파편화와 인간실 종의 문제 / 도구적 지식에 대한 비판 / 성장제일주의에 대한 비 판 /인간 교육의 문제 / 미래적 삶과 삶의 대안적 방식에 대한 문제 / 생태주의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 / 정보의 독점과 공유 / 도덕성 상실의 문제 등이 출제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준비라는 것이학교공부나 학원공부로서는 대처할 수 없게 되어 있다.논술이 어렵다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중고등학교 교육도 그렇고 근래의 대학공부라는 것도 크게 다르 지 않은데마냥 세계화, 시장논리 등을 무비판적으로 앵무새처럼 외우지만논술문제는 그와 전혀 다른 시각을 요한다.이를테면 세계화의 부작용과 그늘,시장논리의 비인간적 측면에 대한 비판을 요구한다.또 학생들은 소비문화에 젖어있지만정작 논술문제는 소비문화에 대한 비판을 요구한다.학생들의 문화적 생리일반과 충돌하는 것이다.그러니 당황할 수밖에 없고 문제의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4.논술에서 특별한 요령이나 기법은 따로 없다.‘
보는 문화’가 아니라‘읽는 문화’에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이고인간적 삶의 문제,그리고 사회적 건강성의 문제에 대한 기초적 소양과그 문제들에 대한비판적 감각과 균형적 감각을 익혀나가는 이상의 방법은 없다.

그러니까논술은 글쓰기인 것 같지만실은 그 이전에, 읽고 생각하기가 먼저다.읽지 못하고 생각이 없다면 논술은 안된다.

아마 교사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는 교육을 하다가갑자기 생각하게 하는 교육을 하려니까‘보는 문화’에서 ‘읽는 문화’로 전환하려니까적응이 쉽지 않을 것이다.오랜 동안의 주입식 교육의 타성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교육이 정상적이라면모든 교사가 논술을 지도할 수 있어야 한다.수업자체가 논술형으로 바뀌어야 한다.논술은 논술교사가 따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교사들이 각자의 분야에서,인간적 삶을 복원하고사회적 건강성을 회복할 수 있는그런 문제들을 놓치지 않고그에 대한 가치판단을 중심에 두는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면그것이 논술을 지도하는 첩경일 것이다.

/배영순(영남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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