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회의 옛 글 읽기]사물과의 대화
[조선일보 2004-07-23 17:33]
옛 사람의 문집을 들추다 보면 대세를 잡고 있는 시와 편지 사이에 초라하게 끼어 있는 글을 가끔 보게 된다. 새긴다는 뜻을 지닌 명(銘)이란 문체로 연명(硯銘) 검명(劍銘) 침명(枕銘) 등등 그 이름도 많다. 길이도 몹시 짧고, 운문과 산문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형식이라 다른 장중한 문체에 치이는 느낌을 준다. 명은 이제는 사라진 낡은 문체지만 지금도 좌우명(座右銘)이란 말에 옛 모습이나마 희미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박물관이나 골동품 가게에 진열된 벼루나 문갑, 필통 등을 보면 한문으로 새겨져 있는 명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이런 글을 기물명(器物銘)이라 부른다.
옛 선조들은 세숫대야를 비롯하여 베개, 담배통, 신발, 칼, 거울 등등 온갖 일용잡기에 기물명을 새겨 넣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무엇보다 손으로 공을 들여 만든 물건 하나하나가 소홀하게 취급할 수 없을 만큼 귀하기 때문이리라. 일용하는 물건이 아깝고 사랑스러우니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 물건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운치 있는 글로 표현하는 것은 당연하다. 소중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고려 무신정권 시절 최고의 문인으로 추앙받은 이규보(李奎報·1168~1241)는 자신이 쓰는 물건에 마음을 담은 글을 쓰기 좋아했다. 작은 벼루에는 이런 글을 새겨 넣었다.
“벼루야! 벼루야! 네가 작은 것은 네가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야. 너는 한 치 웅덩이에 불과해도 끝없는 내 상상력을 펼치게 돕고, 나는 여섯 자 큰 키에도 네 힘을 빌려 사업을 하는구나! 벼루야! 나는 너와 함께 가리니, 삶도 너와 함께, 죽음도 너와 함께!”(‘소연명(小硯銘)’)
벼루를 마치 다정한 벗인 양 부른다. 벼루가 작다고 상처를 입을까봐 위로하고, 너 없이는 사업을 못하므로 생사를 같이 하겠다고 다짐한다. 작가에게 벼루는 그만큼 소중하다. 남우세스러운 느낌을 줄 정도로 벼루에게 말을 건네지만 가식과 과장이 아니다. 물건을 소유하고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생사를 같이하는 친구 사이 같다.
이규보는 또 몸을 기대는 안궤(案)의 부러진 다리를 고치고서 “피곤한 나를 부축한 것은 너고, 다리 부러진 너를 고쳐준 것은 나다. 병든 이들끼리 서로 도와준 것이니 누가 공이 있다 뽐내랴?”라는 명을 새겨 넣었다. 마치 안궤의 영혼과 말을 건네는 듯, 부서진 다리의 아픔을 이해하는 듯하다. 네가 나를 부축해준 것처럼 나도 너를 고쳐주며 서로 돕고 사는 처지이므로 덕을 베풀었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아이들이 주전자나 등잔하고 서로 말을 주고받는 동화를 읽는 듯하다. 순수함을 잃지 않았다는 증거다.
이렇게 사물과 깊은 영혼의 교감을 주고받는 기물명을 지성인들은 심심찮게 지었다. 벼루 같은 문방사우가 가장 애호되었지만 신발이나 참빗, 안경에도 써넣어 아무리 작은 물건일지라도 애지중지하는 마음을 담았다. 영정조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의 하나인 이용휴(李用休·1708~82)는 그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에 이런 명을 새겨 넣었다.
“나무가 거꾸로 자라면 사람이 바로잡아 주고, 사람이 위태롭게 걸으면 나무가 부축해 준다(木倒生 人正之 人行危 木支之).”(‘장명(杖銘)’) 글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짧으나 의미는 심장하고 여운은 길다. 지팡이 한 자루에서도 인생의 의미를 캐고 몸가짐을 바르게 하려는 자세를 읽을 수 있다. 우리 시대에 기물명을 짓는 사람은 없다. 기물명은 현대인에게는 죽은 문체다. 그러나 문체만 사라졌을까? 일상에 쓰는 물건들을 소중히 여길 만큼 물건이 귀하지도 않다. 영혼을 거론할 만큼 손때 묻혀 만든 물건이 드물 뿐 아니라, 사물과 대화를 주고받을 만큼 현대인은 순수하지도 않다. 사라지고 잃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님을 고전을 접할 때마다 느낀다.
(영남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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