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중요성 재인식, 국격 높이는데 일조"
과수품종 30여종 개발한 과수육종 전문가
"농촌진흥청이 세계 일류기관으로 갈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한국 농업의 위상을 세우고 국격을 제고시키는데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난해 12월 농촌진흥청 차장에 취임한 강상조동문(73.원예).
姜차장은 "산업화로 인해 농업의 위상이 추락되고 있는 현실에서 국민들에게 농업의 중요성을 재인식, 어떻게 각인시키는가 하는 것이 고민"이라며, 농업의 발전 없이는 중진국까지는 갈 수 있지만,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농업기반이 필수요건임을 강조한다.
▲ 선진국 진입,농업기반 필수요건, 농업은 1차산업 아닌 6차산업
"G7등 선진국 중 농업선진국이 아닌 나라는 없다. 농업선진국이 되지 않고는 경제대국에 낄 수 없다"는 姜차장은 IMF 위기 당시 식량부족 국가들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한국은 식량(쌀)의 자급이 가능했기에 IMF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한다.
"농업은 1차 산업이 아닌 1차+2차+3차산업을 융복합한 6차산업"이라는 姜차장은 농업과학기술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해 대학과 민간기업의 융복합, 농업발전의 방향성 제시뿐만 아니라 R&D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가 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자 임무라고 한다.
"농촌진흥청은 과거에는 국민의 먹을거리를 찾아 주는 것에서부터 70년대 통일벼의 녹색혁명, 80년대 비닐농법의 백색혁명을 거쳐 이제는 농산물을 이용한 식의약 소재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姜차장은 이를 위해 의과대학 및 약학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해 천연물질을 이용한 식의약품 품종개량에 치중하여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도 역점을 두고 있단다.
▲ 농산물 이용, 식의약 소재 개발, '문익점 프로젝트' 토종 종자 보존
"농촌진흥청에서는 종자산업 발전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하고 우수한 국내의 유전자원 수립을 위한 '문익점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는 姜차장은 그 일환으로 국내 토종 종자 확보를 위해 '토종종자 기증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며, 이 프로젝트는 토종 종자가 사라지기 전에 이를 확보해 보존하고 개발하여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 내겠다는 것이다.
과수육종 전문가인 姜차장은 사과 '홍노'과 천도복숭아 '천홍' 등 과수품종 30여종을 개발·보급했으며, 고려대에서 '복숭아 육성품종 특성 및 분류 Maker 개발'로 농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 농가에서 재배, 추석 때마다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홍노' 사과를 볼 때면 흐뭇함을 감추지 못한다"는 姜차장은 좋은 품종을 개발하여 농가의 소득에 기여하고 외국 품종보다 우위를 차지하여 로열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수육종 품질개발에 고심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 온 것에 보람을 느낀단다.
▲ 사과 '홍노'등 30여종 개발, 과수육종 품질개발 보람
지난 78년 농촌진흥청 원예시험장에서 농업연구사로 공직생활을 시작한 姜차장은 청장비서관, 원예연구소 과수과장, 난지농업연구소장, 연구개발국장, 고령지농업연구소장, 원예연구소장,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등을 역임하는 등 주로 과수육종 분야에 몸담았다.
특히 난지농업연구소장 재직시에는 뛰어난 업무 추진으로 최우수연구기관상 및 혁신우수기관상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시에는 책임운영기관 평가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
영남대 출신 농촌진흥청 최초 입사자인 姜차장은 "당시 농촌진흥청에 근무하는 동료들이 영남대를 잘 몰랐다"며, 영남대 출신임을 항상 당당하게 생각하며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차장에 올라 영남대를 명문대학 반열에 진입시켜 자부심을 느낀단다.
스스로를 '1박 2일 근무자'라고 자칭하는 姜차장의 말에서 그동안 연구자로 밤낮은 물론 토 · 일요일도 없이 얼마나 열심히 일에 몰두하여 왔는가를 알 수 있다.
▲ 영남대 출신 농촌진흥청 1호 입사, 자칭 '1박 2일 근무자' 일에만 몰두
姜차장은 경남 진주의 부농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자신이 판 · 검사가 되길 원했고, 자식 들 중 한 명은 농대에 진학하여 농사를 대물림해주길 바랐다. 우여곡절 끝에 원예과에 입학한 姜차장은 1학년 때는 공부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다가 2학년 2학기부터 당시 원예학과 노승문교수의 연구실에 들어가 학업에 매진하면서 "농사가 많다고 농업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연구자의 길로 가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농촌진흥청에서 일을 해보니 적성도 맞고 농대에 진학하길 잘 했다"는 姜차장은 자신의 진로를 개척해 준 노승문박사(現 미국 농무성 근무)와는 주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많은 자문을 받고 있단다.
대학시절 수업이 끝난 후에는 농대에 한 대 뿐인 경운기를 몰고 '농군'이 되어 농대 뒤편 야산을 논 · 밭으로 만들었던 일, 농대 체육부장을 맡아 종합체육대회에 참가했던 에피소드 등 학창시절 추억도 떠올린다.
▲ 모교 당국, 교수들의 많은 지도, 官界 진출 후배 늘었으면.....
"부지런하고 노력하며 누구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단련해가는 힘이 강한 것이 영대인의 강점"이라는 姜차장은 몇 년 전부터 농촌진흥청에 후배들의 맥이 단절되어 무척 아쉽다며, 농촌진흥청뿐만 아니라 官界로 더 많은 후배들이 진출할 수 있도록 모교 당국과 교수들의 많은 지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1954년 경남 진주출신으로 진주교육대학교 출신인 부인 문귀녀여사와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수원에서 교직에 종사타가 지난해 퇴직했다. 장녀 경주씨는 서울대에서 석사학위(원예학 전공)를 취득하여 민간연구소에 근무하고 있으며, 차녀 미주씨는 건국대 경영학과를 졸업 후 호주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 申在七편집부장, jclucky@daum.net >
강상조 차장은.........
▲농학박사
▲난지농업연구소장
▲원예연구소장
▲국립원예특작과학원장
▲최우수연구기관상 및 혁신우수기관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