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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론의 마술-배영순 교수  
--- 사무국 --- 4346
글쓴날짜 : 2006-07-12
<방하 한생각>결과론의 마술
[문화일보 2006-07-11 14:38]


대통령과 권투챔피언 그리고 도둑이 있다. 이들 세 사람은 어린 시절에 다 같이 골목대장을 해본 경험이 있었다. 전기 작가들이 이 사람들의 과거를 기록한다면 어떻게 쓸까? 아마 이렇게 되지 않을까? 대통령은 어린 시절부터 리더십이 돋 보였으며 골목대장을 할 때부터 지도자적 자질이 엿보였다고 쓸 것이다. 또 권투챔피언의 경우에는 어릴 때부터 유달리 주먹을 잘 썼고 그래서 골목대장을 할 때, 이미 챔피언의 조짐이 엿보였 다고 쓸 것이다. 도둑의 경우는 어린 시절부터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싸움질이나 하는 불량기가 심했다고 쓸 것이다.
삼천리 방방곡곡마다 골목이 있고 골목마다 골목대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같은 골목대장의 경력이 왜 전혀 다른 방향으로 해석되어지는 것일까?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가령 일류대에 합격한 학생이 잠을 충분 히 잤다면 수면안배를 잘 한 것이 합격의 원인이라고 말할 것이 다. 그렇지 않고 하루에 세 시간만 잤다고 하면 밤잠을 자지 않 는 것이 합격의 원인으로 강조할 것이다. 합격한 한 학생은 많이 자도 적게 자도 다 합격의 원인으로 성립한다.

그러나 입시에 실패한 학생의 경우, 잠을 충분히 잤다면 너무 많 이 자서 실패했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세 시간만 잤다면 수면안배에 실패해서 떨어졌다고 할 것이다. 실패한 학생은 잠 을 많이 자도 적게 자도 그 어떤 것도 실패의 원인으로 성립한다 .

이렇듯, 시험에 합격한 학생은 무슨 이유를 갖다 붙여도 합격의 원인으로 성립한다. 반면 시험에 실패한 학생은 그 모든 요인들 이 실패의 요인으로 둔갑한다.

이것이 바로 ‘결과론의 마술’이다. 정상적인 인과관계라는 것 은 원인으로부터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지만 이 경우는 결과에다 원인을 역으로 끼워 맞추는 것이다, 이런 결과론의 마술은 의외 로 강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니다. 우리가 결과에 비굴할 정도로 간사하기 때 문이다. 달리 말하면 대통령과 챔피언과 도둑이라는 현실의 역학 관계, 합격자와 낙방자라는 역학관계에 눈이 어두워 객관적인 인 과관계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역학관계에 따라 인과관 계를 조작해도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배영순 교수(영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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