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의 근본은 誠意, 성의의 근본은 愼獨”
천마장학생 입학, 司試 4번 도전 후 합격
대학시절 지리산 등 등산 통해 젊음 설계
모교 법학과 79학번이면서 20년째 법관활동을 하고 있는 김찬돈 대구지방법원 수석부장판사.
지난 해 2월, 고위법관으로 가는 관문인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한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겨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 인터뷰 요청을 하고 보니, 지방법원 산하 각 지원의 감사업무 때문에 순회근무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각 기수별로도 한명이 배출되지 못하는 고등법원 부장 승진은 지방에서는 더 더욱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귀하고 영광스런 자리다.
金동문은 재수를 거쳐 천마장학생으로 모교에 입학한 뒤 2학년 말부터 사법고시에 전력을 쏟았다. 몇 달 뒤 치르진 제23회 사법고시 1차 시험에 당시 3학년으로는 예상외로, 그것도 입학 동기생들 가운데 혼자 합격하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치른 두 번째 2차 시험에도 탈락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함께 숙박하면서 시험을 치른 주호영 동문(현 특임장관)은 합격했다. 金동문과 朱장관은 고등학교 동기이다. 金동문은 결국 4번의 도전 끝에 제26회 사법고시에 만족할 만한 성적으로 합격하는 성취감을 맛봤다.
김찬돈 동문은 대학시절 사법고시에만 매달린 완고한 청년이 아니었다. 당시로써는 가기가 쉽지 않았던 지리산과 설악산 등으로 장거리 등산을 자주 다니며 나름대로의 젊음을 설계하기도 했다. 학기 중에는 학내 행사에 충실히 참여했을 뿐 아니라 영화나 연극 감상 같은 정서적 취미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웃기는 것은, 2학년까지는 수염도 깍지 않은 채 흰 고무신에 계절에 맞지 않는 옷차림을 즐긴(?)탓에 동기생들이 별종으로 불렀다고 한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격동기에 학창시절을 보냈던 金동문은, 1980년 5월 경산캠퍼스에서 대명동 캠퍼스까지 최루탄연기를 뚫고 행진하는 거리시위에 참여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고 한다.
20년 법관생활을 거치며 자신이 맡은 사건 중 기억에 남는 판결로는,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대표인 시골 동장을 공갈과 협박 등 혐의로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건이라고 한다. 야간 당직판사였던 자신에게 검찰이 특별히 영장발부 요청을 한 이 사건의, 일천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기록을 살펴보니 업자가 동장을 구속시켜 골프장 건설을 원활히 하려는 ‘청탁성 수사’라는 소신이 확연했다는 것이다.
2년 뒤 경주지원으로 부임해 아주 오래된 미제사건을 살피던 중 이 사건이 복잡하게 얽히고 섥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동네 주민 30여명을 증인으로 소환하는 등 장시간의 심리를 거쳐 상당부분은 무죄판결을, 유죄가 인정된 부분에 대해서는 선고유예의 관대한 형을 선고했다고 한다. 동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그 골프장 건립은 사실상 무산됐기에 이르렀다.
다음으로 포항지원장으로 근무하던 2006년 7월 말 포항건설노조에서 포스코 본사를 점거해 노조위원장과 지도부 등 58명이 한꺼번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사건은, 1997년 한총련 5기 출범식 때 195명 구속 이후 최대 규모였을 정도로 전국적인 이목이 집중됐다. 민주노총과 건설노조원들의 시위 속에서 지원장으로서 재판을 무사히 마치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고비들을 넘어야 했다고 한다. 그 사건 이후 포항건설노조의 강경노선이 바뀌고 지금은 심각한 분규는 없다고 한다.
법관으로서의 바람직한 자세를 묻자 다산 정약용 선생이 목민심서에서 재판에 대해 말한 글을 좋아 한단다. ‘聽訟之本 在於誠意 誠意之本 在於愼獨’(재판의 근본은 성의에 있고, 성의의 근본은 신독(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몸을 삼가고 조심한다)에 있다는 뜻이다).
정약용 선생이 말한 ‘성의’를, 재판당사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재판에서 가급적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발언을 적게 하려고 노력한단다. 국민들이 법정에서 자기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줌으로써 재판의 승패를 떠나 신뢰를 얻는 첫걸음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최근 다시 불거지고 있는 국민들의 사법불신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도 법관들이 ‘좋은 재판’을 하는 것이 국민의 신뢰를 얻는 지름길이고, 다음으로 국민들이 법원에 참여하는 기회가 확대되어야 한다고 했다.
‘좋은 재판’이란 그 내용이 헌법과 법률, 정의에 들어맞을 뿐 아니라 그 절차 또한 공정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金동문은 후배 법관들에게 “겉으로 우리가 법대 위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재판하고 있지만, 법대 아래에 있는 국민들은 늘 우리 법관들을 재판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단다.
김찬돈 동문은 법원 안에서는 업무능력이 탁월하고 친화력이 뛰어 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직원들에게는 개인돈을 털어서 식사대접도 잘 하는 무엇보다 인간적인 따스함이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법관으로서 정년까지 근무하다가 명예롭게 퇴임을 하기를 바란다는 金동문은, 모교 재단이나 학교에서는 지속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고 철저한 학사관리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알찬 교육을 주문한다. “영남대 졸업생이면 믿을 수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도록 교수들이 철저하게 수업을 시켜야 한다고 강조한다.
〈채장수 편집국장, jscha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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