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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대학의 ‘자전거 사랑’ -박홍규 법학 교수  
--- 사무국 --- 4322
글쓴날짜 : 2006-08-10
[경향신문 2006-08-10 19:15]

〈박홍규/영남대교수·법학〉


지난 7월 초 유럽에 갈 때 월드컵을 보러간다고 오해한 사람들이 많았다. 무슨 대단한 학문을 연구하기 위해 간다고 오해하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전거를 보러간다고 했더니 세계 사이클 대회라도 열리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하니 그럼 사이클이 취미냐고 다시 물었다. 그런 고상한 취미는 없고 그냥 생활 속에서 자전거 타는 걸 구경하러 간다고 했더니 아예 말문을 닫았다.


-출퇴근 교수들 대부분 이용-


세계에서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탄다는 유럽 북쪽 끝 네덜란드 흐로닝겐에서 그 남쪽 끝 스페인 라 만차까지 자전거 타는 것을 관찰해보면 우리나라에서도 자전거를 많이 탈 수 있도록 하는 비결이라도 찾지 않을까 기대하며 40도가 넘는 유럽을 한달쯤 방랑했다.


그러나 지난 열번 정도의 유럽여행처럼 이번에도 그런 비결을 알지 못하고 헛돈만 쓰고 돌아왔다. 다른 교수들처럼 억대까지는 아니어도 몇 백 만원의 연구비라도 받아갔더라면 손해는 보지 않으리라고 안타까워한 동료도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생활 속 자전거 타기 연구’ 따위에 누가 연구비를 줄까? 철없던 교수 초년 시절 외에는 연구비를 신청한 적이 아예 없어 그쪽 사정을 전혀 모르지만 말이다.


유럽에서 배울 게 많다고들 하여 교수나 학생들이 들끓는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유럽 대학에서 배울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자전거 타기이다. 아무도 모르는 듯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는 못 받아도 자전거 타는 버릇만은 확실히 익혀 왔으면 좋겠는데 유럽에서는 자전거를 잘 타다가도 한국에만 돌아오면 자가용을 타니 이상하기 짝이 없다. 흐로닝겐을 비롯하여 유럽에서도 자전거를 가장 많이 타는 곳은 대학이고, 특히 출·퇴근을 하는 교수들 대부분이 탄다.


황우석과 김병준으로 대표되는 대단한 우리 교수들을 보면서, 그들이 타는 대단히 큰 자가용과 엄청난 액수의 연구비, 게다가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아니 꿈에라도 찾아올까 두려운 권력과 부를 보면서, 우리 대학에서도 평생 자전거를 타고 매일 출·퇴근하는 청빈한 교수들이 많이 나타나기를 꿈꾸어보지만 아마도 겨우 잠을 이루어 꾼 열대야 꿈보다도 허무하리라. 수 십 명이 죽은 한증막 같은 더위에도 에어컨 없이 매일 연구실에서 땀흘리는 유럽 교수들을 보면서, 에어컨이 완비되어 있음에도 텅 빈 우리의 연구실, 시간대로 완비되어 있음에도 텅 빈 출·퇴근 버스가 저절로 생각났다. 그 교수들은 고성능 에어컨을 자랑하는 대형 자가용을 타고 엄청난 연구비나 기업인 또는 정치인을 찾아갔는지도 모른다.


여행 초 북한이 미사일을 쏘고, 특히 여행 중간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략하자 거리 곳곳에 ‘평화’라는 깃발이 나부꼈다. 유럽에 갈 때마다 자주 들르는 암스테르담의 아나키즘 서점에서 만난 백발의 80대 노교수도 타고 온 자전거 앞에 반전 평화 깃발을 달고 있었다.


-대형車 타는 우리현실 씁쓸-


레바논을 침략한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을 지지하는 미국을 맹 비난하면서, 그가 미국과 한 패라고 보는 한국에 대해서도 분노를 금치 못한 노교수는 평생 자전거를 탔다고 하면서 반전, 반핵, 반세계화를 주장하는 진보가 자가용을 굴리고 골프를 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아 연구를 한다는 것도 반권력을 주장하는 한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서양에서 연구비를 거부하는 촘스키를 비롯한 일부 진보 교수들의 경향을 소개했다.


내가 싫어했음에도 결국 터져 나온 우리 정부에 대한 그의 질문에 답하면서 진보적 지식인 중심의 참여정부라고 자랑했더니 그런 정부가 어떻게 미국과 함께 이라크를 침략하느냐고 물었다. 침략군이 아니라 평화유지군이라고 설명해도 그는 미국의 중동 침략 전모를 설명하면서 한국군도 침략군에 불과하고 부시와 마찬가지로 한국 대통령도 전범으로서 언젠가 심판을 받으리라고 했다. 아, 이제 우리 대통령이 국내 심판이 아니라 국제 심판을 받게 되는가? 이것도 국제화, 세계화의 하나인가? 그와 헤어지면서 나도 한국에 돌아가면 자전거 앞에 반전 평화 깃발을 달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 달 만에 돌아와 긴 장마에 녹이 슨 자전거를 꺼내 다시 타면서 그 깃발을 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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