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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홍규 칼럼] 쓰레기로 지은 집  
--- 사무국 --- 4288
글쓴날짜 : 2006-09-08
[경향신문 2006-09-07 19:30]

2000년이 되기 전에 죽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죽는 대신, 어쩌다 생긴 개와 함께 시골로 갔다. 처음 찾은 마을 이름이 ‘당음’이었는데 당시 읽던 책, 당시 집의 제목과 같아 그 곳의 밭을 샀다. 그러자 전세로 살던 아파트가 10년 만에 팔려 밭 주변 집을 사서 고3 아이를 데리고 이사를 했다. 거기서 집 짓는 꿈을 꾸며 소로와 니어링을 다시 읽었다. 소로는 숲의 나무를 베어 호숫가에 오두막을 지었고, 니어링은 산 속의 돌을 주워다 집을 몇 채나 지었다. 그러나 내게는 나무도 돌도 없었다. 있었다고 해도 내 마음대로 집을 짓는 데 쓸 수 없었다.


소로나 니어링처럼 집을 지으려고 한다면 분명 법에 걸렸으리라. 그처럼 소로나 니어링의 집은 나와는 무관했다. 우리에겐 불가능한 미국 이야기에 불과했다. 물론 우리 조상들은 소로나 니어링처럼 집을 지었다. 그러니 그 조상의 나라였던 조선이나 그 이전 나라들도 우리 한국과는 무관한 것인가? 그러나 소로나 니어링처럼 산다고 치자.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조상이나 북한 사람들처럼 굶주릴 것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그런 소로나 니어링의 책을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농부는 당연히 읽지 않는다. 대신 나 같은 소위 먹물이 아파트 안락의자에서 읽으며 망상을 한다.


-몇달동안 주워모아 지은 별장-


그러나 나도 소로나 니어링의 나무나 돌같이 스스로 집을 지을 소재를 찾았다. 바로 쓰레기였다. 나의 집이나 밭 주변은 치워야할 쓰레기 천지였으나 아무도 치우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몇 달 동안 주워 모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소나무 숲 아래 나의 첫 별장을 지었다. 여기서 호수나 별장 등의 표현에 대해서는 사실 연못과 헛간 등에 불과하다는 이견도 있으나 나는 송하정이라는 현판을 달고서 그곳에서 책을 읽고, 밭을 갈았으며, 작은 연못도 1년이나 걸려 팠다가 다시 메우곤 했다.


소로나 니어링처럼 TV나 라디오나 휴대전화나 MP3는 물론 신문이나 전화도 없이 지냈다. 그러나 그들처럼 조용하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살지는 못했다. 그런 자연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었다. 삼천리 금수강산 어디에서도 그럴 수 없었다. 그 아무리 깊은 첩첩산골도 돌아서면 괴상한 모텔이고 더러운 축사이기 때문이었다. 소위 전원주택이란 것도 모텔 옆 축사 뒤, 폐차장 앞 소각장 뒤, 게다가 각종 오염공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에서 어렵게 돌아온 소위 귀농농부가 거대한 축사를 지어 그야말로 오물 속에서 사료로 닭과 소와 돼지를 키우는 것을 보고, 차라리 외국의 전원에서 평화롭게 자라나고 값도 싼 그것들을 사먹는 것이 더 좋지 않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비가 오면 나의 송하정 앞 호수에는 수만마리 물고기의 시체가 떠올랐고, 하루 종일 악취로 마을은 죽어갔으며, 그 호수에는 주말에 낚시를 하는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가득했다. 그래도 자연의 오염은 사회의 오염보다 덜 했다.


산업화와 상업화, 기계화와 획일화된 도시를 떠나 시골에서 살면 인간화된다는 이야기를 나는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어쩌면 시골은 도시 이상으로 살벌하다. 그 시골에서 재산은 물론 생명과 신체의 위협까지 느낀 탓으로 나는 송하정을 해체하고 컨테이너를 갖다놓고서 임시 거처로 삼아야 할 일까지 생겼다.


그러나 컨테이너는 집이 아니라 칸에 불과하다. 그곳에서 아무리 책을 읽으려고 해도, 그림을 그리거나 음악을 들으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시골은 도시보다 살벌하다-


그래서 올 봄부터 다시 집을 지었다. 매일 아침, 저녁 황토벽돌을 만들어 벽을 쌓고 문과 창을 달아 가을이 오면 완성할 참이었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날, 내 밭을 포함한 지대의 논밭을 내 키보다 더 높게 돋우는 토목공사를 한다며 내가 지은 집을 허문다고 했다. 거대 아파트 회사 사람처럼 보이는 사람이 내가 지은 집을 보면서 이런 쓰레기를 왜 만드느냐며 비웃었다.


〈/ 영남대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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