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건축,청색도시
이제 시민이 디자인한다
녹색건축(綠色建築)은 이 땅위에 지어지는 건강한 건축을 말하고,
청색도시(靑色都市)는 이 하늘아래 세워지는 생명의 도시를 말한다.
이 땅은 인자한 어머니의 품안이고,이 하늘은 믿음직한 아버지의 품밖이다.
건강한 건축은 우리의 삶이 되고, 생명의 도시는 우리의 삶터가 된다.
내가 살고 우리가 사는 터는 내가 스스로 가꾸고 우리가 먼저 나서야지,
나의 삶을 대신 살아 줄 사람도 없고,우리의 삶터를 대신 지켜 줄 사람도 없다.
바로 시민이 삶과 삶터의 주인인 동시에, 삶과 삶터를 디자인하는 주체가 된다.
녹색건축과 함께 즐거운 생활을
녹색은 자연이 만들어 낸 가장 아름다운 색깔이다.
빛의 삼원색중에서도 제일 화려하고 생기가 넘친다.
먹이가 되고 피와 살이 되는 것은 모두가 녹색이 아닌 것이 없다.
녹색만 보면 황홀하고 푹 빠져든다.그러나 여유롭고 곧 활력이 넘친다.
생산과 성장이 녹색의 상징이고,산소와 환경이 녹색을 대변한다.
녹색은 전통논리에서 더욱 그 의미가 심장하다.
해뜨는 동(東),오장중의 간(肝) 얼굴의 눈(眼),그리고 소나무를 상징했다.
동쪽에서 해가 안뜨고,오장중에 간이 없고, 얼굴에 눈이 없다면 어찌 되는가?
소나무야말로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사시사철 그 푸름을 뽐내는 한국의 대표 수종이다.
어디 그뿐인가,소나무야말로 바위까지 뚫으며 인고의 뿌리를 내리는 우리 국민성과도 닮았다.
이처럼 녹색의 의미는, 자연과 생명에서부터 튼튼한 육체와 건강한 생활까지 그 폭 또한 넓다.
녹색건축도 다름이 아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은 건축이고,생태적으로는 자연을 닮은 건축이다.
밝고 명랑하며,참고 잘견디는 '건강한 사람이 사는 집'이라고 해도 좋다.
그 집은 자연과 생기로 가득하며,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집이다.
그레서 언제나 평온하고 안락하여 만족한 마음과 즐거운 생활이 끝이 없는 집이다.
인간이 자연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집은 녹색을 버리고는 존재할 수가 없다.
녹색의 자연은 발아와 생육,개화와 결실,수확과 환희의 표상이기도 하다.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 인간이 저지런 자연모독과 그 훼손행위는 극도에 달했다.
먹고 싶은데로 잡아먹고, 쓰고 싶은데로 베어내고, 살고 싶은데로 파헤치고 까뭉겠다.
나무 없으면 석탄, 석탄 없으면 석유,석유가 동나면 이제 원자력까지 갈 때까지 갔다.
기후변화, 지각변동등 지구에 이상이 생기고, 미래의 생존문제도 불확실해 졌다.
급기야 U.N이 나서고 세계가 급박하게 그 대책을 서두르고 있지만 불가항력이다.
기후협약, 저탄소 성장등 갖은 해결책도 내놓고 있지만 지구재생까지는 솔직히 부정적이다.
인구에 먹고 살기까지 급박한 국가간 경쟁에서, 눈가림이고 땜질처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레도 한가지 방법은 있다.
바로 녹색건축의 생할방법과 실천운동이 범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일이다.
지구인 모두가 스스로 자각하고, 건강하게 잘 살겠다는 의지만이면 되는 일이다.
개개인이 하고 싶어서 하고, 이득이 되니까 하고,신이 나서 해야 되는 일이라야 성공한다.
땅과 집은 녹색으로 덮고,도로와 아스팔트는 투수형 크린제품으로 그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
땅위에는 공기유통이 원활해야 하고,땅밑에는 물길순환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눈비를 막는 도시 '코리더'형 가로를 만들고,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해서도 도로턱은 없에야 한다.
크게는 U.N을 중심으로 각 국가별 환경지침을 수립하고 국가간 협력체제를 구축해야 하며,
적게는 정부가 제도적으로 유인하고,뒤에서 받쳐주고,시민이 앞장서도록 유도해야 한다.
녹색건축을 위한 공공 인프라만 깔리면 녹색생활은 즐거운 시민몫이 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민이 녹색건축의 주인인 동시에,청색도시의 관리자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청색도시와 함께 아름다운 환경을
청색은 높은 하늘처럼,넓은 바다처럼 푸르고 양양하다.
시원하고 확 뚫려서 진취적이고 또 희망적인 색깔이다
빛의 3원색중 자연이 만들어 낸 가장 깨끗하고 고귀한 색이다.
실제로 녹색과 청색은 한가지로 푸른색이다.
이른 봄, 파릇 파릇 돋아나는 새싹의 색갈이다.
지구와 우주공간의 바탕색이 바로 푸른색이다.
산도 가까이 있고 낮으면 녹색으로 보이고,멀리 있고 높으면 청색으로 보인다.
녹색이 땅이라면 청색은 하늘에 비유할 수 있다.
녹색이 사람의 육체라면 청색은 그 정신이라고 해도 좋다
오행상으로는 녹색과 같고,그 중에서도 용(龍)과 혼(魂)이 청색과 가깝다.
청룡이 그렇고 혼백중의 혼이 또 정신적인 속성이라 그렇다.
용은 높은 곳으로 오르고, 혼은 하늘로 올라가는 성질(性質)이다.
청색은 하늘의 뜻을 따르고,또한 자연의 순리를 따라간다.
청색도시 역시 다름이 아니다.
녹색건축이 이같은 청색속에서 청정한 생명력을 가지는 도시가 바로 청색도시다.
깨끗한 마음들이 푸른 도시에 머물고,즐거운 생활들이 푸른 자연에서 펼쳐진다.
높 푸른 하늘,더욱 푸른 산,푸르디 푸른 물,맑디 맑은 공기 그리고 드넓은 초록의 숲,
내가 갖고 싶은 집,내가 걷고 싶은 거리,우리 모두가 잘사는 마을,
정다운 사람들,흥겨운 시간들,신나는 장소들,모두가 풍요롭고 편안한 도시다.
지금처럼 생기를 잃어버린 피곤한 도시,오염에 시달리는 초죽음의 도시는 정말 안된다.
길거리는 간판과 노점상들이 난립하고,매연을 뿜어대는 빽빽한 자동차의 행렬에는 숨이 막힌다
개발과 성장에만 눈이 어두워,자연은 마구잡이로 훼손되고 또 도시는 제멋대로 비대해져 버렸다.
삶과 삶터는 재개발 재건축으로 파괴되고,뉴타운이란 명목으로 실패의 흉물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철거때 한꺼번에 쏟아질 아파트 쓰레기는 어찌하고,그 자원낭비와 생활공해는 또 어쩐단 말인가?
현재는 탁하고 지저분해서 살기 힘들고,이대로 가면 미래에도 아무런 희망조차 가질 수 없다.
그렇다고 주저앉아 그만 둘 수도 없고,차일피일 세월만 기다리며 지켜볼 수도 없는 형편이다.
우리의 삶과 삶터는, 반드시 우리손으로 다시 일으키고, 또 꾸준히 잘 지켜나가지 않고는 안된다.
이제 입버릇처럼 부르짖는 정치적 구호나 행정적 선전만으로는 안된다.
경제만이 살길이라고 경제적 논리에 얽메인 도시개발론은 더욱이 휘험하다.
결국 문화논리가 도시재생의 핵심사상으로 자리잡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란 말이다.
문화논리는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인간사회'에서만 존재하는 이름이다.
생태계의 재생시스템속에 인간의 생명과 생활이 항상 그 중심에 있어야 하고,
자연계의 보존시스템속에 인간의 건강과 휴식이 늘 함께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이러한 청색도시가, '아름다운 환경을 노래하고 즐기는', 그야말로 진정한 이상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한가지 필수불가결한 과제가 있다.
시대를 토막내지 말고 세대를 이어가는 지속가능한 시민문화를 엮어내야만 한다.
시민문화가 아니고서는 그 어떤 해결책도 있을 수 없음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녹색건축, 청색도시,이제 시민이 디자인 한다
시민문화는 잊어버린 녹색건축과 잃어버린 청색도시를 다시 찾고 다시 세워야 한다.
주거생활의 본질을 되찾고 주거문화의 진면목을 다시 세워야 가능한 일이다.
사는 집이 재산과 소유의 가치가 아니라, 생활과 주거의 안식처임을 똑똑히 해야한다.
가족의 보금자리인 동시에 후세들의 그리운 고향집으로 길이길이 아름답게 남겨야 한다.
이웃들과 정답게 살아가는 공동의 삶터,다정과 웃음이 마음을 열어놓는 즐거운 삶들이,
초록의 들판과 푸른 숲속에 평화롭게 펼쳐진 집이요 마을이라야 한다.
옆집과 벽 하나 사이로 살면서 이웃사람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도시의 아파트 생할,
조그만 집 하나 지어도 진정과 고발에 휘말려 죽을 고생 다하는 도시의 분쟁들,그리고
나 하나 잘 살려고 못먹을 것 다 섞어, 속이고 사기치는 악덕 상술이 난무하는 도시,
정말 이대로는 지칠대로 지쳐서 못살고,또 숨 막혀서도 도저히 살 수가 없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이제 기다림에도 한계가 있는 법.정부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기대도 금물이다.
목마른 사람이 땅 판다는 얘기가 아니드라도 결국에는 시민 스스로가 나서야 될 일이지.
시민의 의사와 반하는 정부의 일방통행적 개발이나 도시재생에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다.
지금도 기존 주민들은 아랑곶없이 '몽땅 철거,몽땅 신축'이 재개발 재건축의 원칙이 된지 오래다.
심지어 기존 타운을 헐고 새타운을 만든다고 '뉴타운'이라고 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새 땅에 새 타운을 만들때 뉴타운이지, 옛타운을 깡그리 뭉겐 폭력타운을 그리좋게 위장하고 있다.
드디어 시민이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왔다.
이제부터는 우리의 삶과 우리의 삶터를 우리 손으로 스스로 디자인하자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디자인의 개념부터 시민의 품으로 찾아와야 한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그 발상 자체가 바로 디자인이지,
꼭 전문 디자이너가 해야만 디자인이고, 꼭 그의 작품이라야 디자인이라는 것은 아니다.
자기 디자인은 자기 생활에서 시작되는 것이고,자기의 생활 자체가 디자인이고 작품이라는 말이다.
나의 건강부터 내가 디자인하고, 우리 집과 우리 가정을 내가 디자인 하며,
나아가 우리 동네와 우리 지역을 내가 참여해서 함꼐 디자인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전문 디자이너의 협력을 구하고,또 정부나 지자체의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바로 시민디자인시대의 개막이다.
시민이 자기 지역계획이나 도시재생 프로그람에 직접 나서서 행동하고,
그 지역 주민이나 도시민들의 의견이 마땅히 존중되고 실천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회의체를 만들고 자문기구를 설치하고,끈임없는 토론을 통해서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지역경제도 중요하지만 그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살려내는 것이 최우선시 되어야 하고,
자연의 생태계도 복원할 뿐만 아니라 지방의 문화특색도 복구해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녹색건축과 청색도시,우리의 삶과 삶터를,
도저히 이데로 더이상 방치할 수가 없다.
내 건강과 내 생명을 내가 지키기 위해서도
이제 내가 나서서 녹청(綠靑)의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분명 하늘의 뜻이고, 땅의 도리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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