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가온 어버이 날에 즈음하여 ...
- 風樹之嘆(풍수지탄) -
樹欲靜而風不止 (수욕정이풍부지)
子欲養而親不待 (자욕양이친부대)
往而不可追者年也 (왕이불가추자년야)
去而不見者親也 (거이불견자친야)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은 봉양하고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려 주시지 않네
흘러가면 쫓을 수 없는 것은 세월이요,
나가시면 다시 볼 수 없는 것도어버이이시라 ..!
[출전]『韓詩外傳』
공자가 유랑하다가 하루는 몹시 울며 슬퍼하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자신이 우는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세 가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첫째는
젊었을 때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다가 집에 와보니 부모님이 이미 세상을 떠나신 것이요,
둘째는
섬기고 있던 군주가 사치를 좋아하고 충언을 듣지 않아 그에게서 도망쳐온 것이요,
셋째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제를 하던 친구와의 사귐을 끊은 것입니다.
무릇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 잘 날이 없고(樹欲靜而風不止),
부모를 모시고 자하나 부모는 이미 안계신 것입니다(子欲養而親不待).
그럴 생각으로 찾아가도 뵈올 수 없는 것이 부모인 것입니다.”
~ 이 말을 마치고 그는 마른 나무에 기대어 죽고 말았다고
그러므로
효도를 다하지 못한 채 부모를 잃은 자식의 슬픔을 가리키는 말로
부모가 살아 계실때에 효도를 다 하라는 뜻으로 쓰이는 말 입니다.
풍수지탄(風樹之嘆)·풍목지비(風木之悲)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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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고향은 경남 산청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되는 나를 대구로 유학을 보냈다. 대구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 1학년 8반,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고자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 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1등을 했는가 배’했다.
명순 애비는 자식 하나는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했다.
당시 우리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을 모아 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집 재산목록 1호였다.그런데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부지...... ’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달려 나갔다.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그렇지만 ~
겁이 난 나는 강으로 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물속에서 숨을 안쉬고 버티기도 했고,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내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그러니까 내 나이 45세가 되던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 요.......’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는 ‘알고 계섰다.
그만 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까지도 감히 물을 수가 없다.
※박찬석(前.국회의원, 前.경북대총장) 일간지 기고中~옮긴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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