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지원 > 자유게시판
 
 
남몰래 흐르는 눈물
 

작성자 정계영 글번호 205
홈페이지 메 일 ynsseoul@hanmail.net
작성일 2009-05-31 19:27:51 조 회 11214

절벽 끝에 몸을 세우니 마을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른 아침이다. 마지막 14줄의 글을 남기고 산에 올랐다.

어릴 때 그렇게도 많이 오르내렸던 봉화산이다.
부엉이 바위 편편한 곳에 등을 누이면 파란 하늘이 선명히 눈에 들어오고
비상하는 새들도, 적막을 깨는 꾀꼬리 소리도 그렇게 생경하지 않았는데

뿌연 안개 속. 잠을 깨는 여명의 순간인가.
온 사방이 적요하다. 60여 성상. 살만큼 살았다.
이제 갈 때가 되었음인가.
하루하루 몸에 기력은 빠져나가고 다리로도 이젠 더 이상 버틸 힘이 없다.

무던히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목적이 있어서라기 보다 이게 옳다고 믿었고 이것이 정의롭다고 믿었기에
나를 양보케 하거나 설득시킬 명분을 찾질 못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패배도 있었고 굴욕도 있었다.
그래도 타협 않고 내 길을 갔다.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 아무도 원망하지 마라" 는 , 유심에서 무심으로 비우기까지
그 통한의 고통을 어찌 이루 헤아릴수 있었겠는가.
나날이 조여오는 오라의 장력이 점점 그 강도를 더한다.

내 뜻에 공감해 나와 함께 한 오래된 친구들과
나와 의기투합한 절친한 동료들이 하나하나 옥으로 갔다.
이제는 내 가족들에게로 오라의 손길이 덮쳤다.

나를 심문코자 서초동 별궁으로 데려갈 땐 나의 탐심과 배덕과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간으로 낙인된 처참한 모습을 지구촌 곳곳마다 생중계하였다.

포토라인에 서서 차마 죽고 싶은 마음뿐인 내게 “지금 심정이 어떠냐”고 물었다. 별궁의 심문꾼이 밝힌 조서의 내용들을 수긍하느냐고, 내자만 알고 나는 몰랐느냐고.

어려운 시절 심지 하나는 굳어 볼 품은 없어도 든든한 의지처로 자처하였던 내자였다.
퇴임 후 소박한 농사꾼으로 남은 생을 살자 하였는데,
죽어서도 조끼주머니를 만지는 여한을 두지 말자고 하였는데,
원래 시골 사람의 자손이고 어릴 때부터 농사일로 시종 여일이 없었는데,
두 자식 출가하여 손자손녀 돌보며 살자 하였는데,

무슨 욕심으로 바리바리 장롱에 금은보화를 축적하였겠는가.
내 탓인 것을. 두 자식은? 사위는? 그 또한 내 탓인 것을. 시간이 되었다.
한 발을 내디디면 이 세상과는 끝이다.

삶과 죽음이 촌음의 갈림길에서 넘어드는 순간 다시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을. 오래도 살았다. 눈물이 난다.

남겨둔 아내와 자식들이 보고 싶다. 내 한 몸이 죽음으로서 아내도 자식도 친구도 동료도 모두 살릴 수 있을게다.

나로 인해 나라도 제 자리를 찾고 동정심 많은 사람은 내 무덤에 국화 한 송이, 소주 한 잔, 담배 한 가치 올려놓는다면 또 기쁘지 아니하겠는가.

별이 사위어간다.


















wfullscreen="true" bgcolor="#000000">

Giovanni Marradi (Piano)


G,Donizetti의 Una Furtiva Lagrima(사랑의 묘약 中)남몰래 흘리는 눈물

Una Furtiva Lagrima(남몰래 흘리는 눈물)

 
인쇄하기 목록보기 이전 페이지로 가기
 

코멘트 달기

 
국민장을 보고 나서요
어떤 해후
남몰래 흐르는 눈물
여보와 당신의 차이는
어버이날에 즈음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