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게 푸르러가는 신록의 계절을 보면
때때로 생명의 신비와 경외함을 느끼곤 합니다.
이제 청포도가 익어가는 칠월,
오늘의 삶이 있음을 감사하면서 위를 쳐다보기 보다는
옆을 바라보는 것의 평안함을 음미해 봅니다.
약간의 시간 여유를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 시작한 것이
두어달 동안 예전보다 더 깊은 고민과 한계 속을 헤매게 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주최 측에서 5편의 작품을 심사하겠다고 요청해서, 시작보다는 과정의 어려움이 컸습니다.
이제 발표를 보고 나니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뒤늦게 꼬리 내리는 이 작태(?)에 대한 질책이 또한 곤혹스럽습니다.
예쁘게 봐주시고, 또다른 시작을 생각해 봅니다.
「건강하고 젊은 시니어」를 꿈꾸며,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청춘을 이야기하던 시절의
감미로움과 열정을 회상하면서 오늘에 충실한 모습으로 살고 싶습니다.
이러한 소식만으로 건재함을 나눌 수 있음이 행복이라 믿습니다.
건강하시고 복된 오늘을 기원합니다.
2009. 06
이 동 걸 드림
[[ 결혼 33주년 ]]
친지로부터 소담스런 동양란 하나가 왔다.
“결혼 33주년을 축하합니다” 라는 말과 함께. 퇴근 후 거실 가운데 자리잡은 축분(祝盆)을 보며, 그간의 세월을 잊고 살아온 나는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건강할 때나 병들었을 때나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겠습니다.” 혼인서약 이후, 나의 인생은 과연 어떠했을까?
나의 아내는 평범하지만 내가 갖고 있지 않은 여러가지를 가지고 있다. 특유의 인내심, 그러나 이것이 미울 때는 지나친 고집이다. 지나친 고집은 편리함보다 불편함이 많다. 의견의 차이는 냉전으로 이어지고 이 고집 때문에 화해의 손길을 내미는 데 꽤나 어려움이 따른다.
문화의 차이는 극복하기가 더욱 어렵다. 유교적 전통이 강한 경상도 집안에서 자라온 나의 환경과, 자유분방하고 화목한 서울의 가정에서 자란 아내와의 생각의 차이는 때로는 갈등(葛藤)으로 이어지며 해소에 긴 시간을 요한다.
신혼 초에, 이러한 차이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꽤나 많은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어느 날 아내에게 반성문을 쓰도록 강압적인(?) 자세를 취한 일이 있었고, 이후 나의 관심은 ‘써오지 않을 경우에 어떻게 할 것인가?’대책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아내의 기분이 어떠했을까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젊음 탓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철없는 행동이었지만 아내는 다음날 잠자는 내 머리맡에 두 장의 반성문을 놓고 아무일 없는 듯 일상을 유지했다.
내심 쾌재(快哉)를 부른 나는 득의만만하여 친지들과의 여러 차례 술자리에서 무용담으로 삼았고 심지어 부부동반 모임에서도 무슨 큰 승전고나 울린 것처럼 자랑을 늘어놓기도 했다.
친구들의 부러움은 물론이거니와 부인들의 분노 또한 대단했지만, 위대한 승리인양 흐뭇함은 오랫동안 즐거움으로 남아있었다.
역마살(驛馬煞)이라도 낀 걸까?
짧지 않았던 세 차례에 걸친 해외 주재원 생활.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가슴 벅찬 설레임과 밤을 낮처럼 근무해야 했던 힘들었던 순간들. 어찌 인생사에 애환(哀歡)이 없을까마는, 궁극적인 어려움은 아이들의 교육이었다. 국내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연히 알게 되는 세종대왕, 이순신, 안중근 의사에 대한 수차례에 걸친 설명에도 늘어만 가는 질문들.
“우리 배 13척으로 왜적의 배 133여 척을 물리친 명량대첩이 과연 사실입니까? 안중근 의사는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왜 도망가지 않았나요?”
가르치는 사람이 더 답답하던 그 시절의 난처함.
슬슬 눈치를 보면서 가기 싫어했던 주말 한국학교를 보내기 위해 벌였던 채찍과 당근의 지루했던 기싸움.
세월이 약이었던가?
어려움 아닌 어려움들을 겪으며 아이들은 성장했고, 힘들다는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고 대학에서 그들의 전공을 잘 소화하여 사회생활의 기초를 다졌고, 이제는 두 아이의 어머니로 성장한 딸과 사회의 초년병으로 세계 속의 한국을 알리는 마케팅 매니저인 둘째.
생각하면 중요한 고비고비에 나는 늘 바깥으로만 돌고 있었다. 아내의 판단에 따라 그녀가 자라온 환경처럼, 대화와 소통을 통한 자유스러움이 있었기에 아이들과의 관계가 슬기롭게 형성된 것 같다. 아이들의 교육문제, 성장기의 인격형성에 아내의 공이 컸음은 반백(半白)을 넘긴 이 나이에 그녀에게 느끼는 또 하나의 감사함이다.
아내는 그 특유의 끈기로 3차례 낙방을 거치면서도 좌절하기는커녕, 쉼없는 노력을 경주함으로써 과체중의 시련을 극복하고 본인(本人) 기준으로 수영의 달인(達人)?이 되었다. 반면 선수급까지 갈수 있는 체격조건을 갖춘 나는 아직도 수영장 편도에서 여러 차례 쉬어감을 반복하고 있으니 거북이와 토끼의 우화가 아닐 수 없다.
이제 인생의 애환을 함께한 아내와의 긴 세월을 되돌아보면 때때로 ‘나의 우매함이 그녀를 얼마나 불편하게 했을까?’ 하는 쑥스러운 후회가 있다.
최근 옛 친구들이 모이면 몇 가지 변화가 있다. 모임의 분위기를 주도하던 주연과 조연이 바뀌었다. 다소 거칠고 과격한 발언(發言)의 주역이 여성으로 바뀐 것이 가장 큰 반전이다.
대학병원장을 지낸 친구의 설명이 다소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인정치 않을 수 없다.
젊음과 늙음, 남자다움과 여성스러움의 원천은 성호르몬이란다. 호르몬은 평생 동안 우리 몸의 생체리듬을 장악하지만, 사춘기와 갱년기, 두 번의 시기에 가장 큰 역할이 있단다.
갱년기에 들어서면서 특히 여성의 경우 여성호르몬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여성스러움이 덩달아 줄어들고, 여성만큼 급격하지는 않지만 남성도 남성호르몬이 줄면서 근육량과 성욕이 줄고, 남성다움이 예전과 다르니 무기력함과 속 좁은 잔소리가 많아진다나.
어찌되었거나 우리는 인생 역전에 대한 궁핍한 이유 하나를 건진 셈이다.
이러한 상황 반전에서, 아내의 전통있는 인내심과 다소 과격해진 호르몬 환경에 젊은 시절의 반성문 사건(事件)을 요즘 말로 ‘들이댄다’면, 여성 상위시대를 구태여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의 옹색함이 어찌 무사할 수 있을까? 진작 배려하는 삶을 가슴에 담았어야 했는데……
33주년.
긴 세월 속에 오늘의 모습이 있기까지 아내의 오래고 깊은 내조를 음미해본다. 최근 OECD 발표에 의하면 한국인 평균 기대 수명은 여성 82세, 남성 76세라 하니, 아직도 남은 세월이 만만치 않다.
아내와의 남은 세월 만이라도, 그간의 수없는 격전(激戰)과 세파(世波) 속에 단련된 내성을 바탕으로 오순도순 서로 보듬어가는 아름답고 행복한 동행(同行)을 만들어야겠다.
[등단소감]
등단을 축하한다는 이메일을 보는 순간, 무엇에 부딪힌 듯 갑작스런 충격에 한동안 멍해져 있었다.
지난 40여 년, 치열하게 살아왔던 일상의 혼돈이 곳곳에 남아, 「감성의 틀」을 정리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 일이었다.
내 인생에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분야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모처럼의 행복함을 함께할 수 있는 가족과 내 삶의 고비고비에 건강한 길잡이로 멘토가 되어주신 이웃이 나에게 큰 행운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미숙한 작품을 선정하여 주신 심사위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부족함을 채우는 것이 이 선택에 대한 나의 도리가 아닌가… 스스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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