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종(69/전자)]"제습기 다 비슷해 보여도 1L·1㏈(데시벨) 차이로 승부 나"
[대기업 누르고 제습기 1위 '위닉스'의 윤희종 회장]
에어컨 핵심부품인 열교환기… 대기업 납품 하청업체로 시작
소음억제·공기정화 기술 개발… 美 컨슈머리포트 평가 1위
삼성·LG전자가 독점하다시피 한 국내 가전 시장에서 제습기(除濕機) 하나로 시장점유율 50%를 지키는 중견기업이 있다. 제습기 시장 1위 업체인 위닉스(WINIX)다.
올해 제습기 시장은 작년보다 2배 커진 8000억원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위닉스는 삼성·LG전자보다 제습기 분야에 7~8년 늦게 뛰어들었는데도 업계 최초로 '5년 무상 품질보증'을 내세우는 등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올해 창업 41년째를 맞는 이 중견기업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경기도 분당의 위닉스 고객만족센터에서 만난 창업자 윤희종(尹熙宗·67) 회장은 "대기업에 비하면 조직이나 자금력 등 모든 게 부족하지만, 품질과 AS(애프터서비스)만은 우리가 한 수 위"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위닉스는 2011년 미국의 권위 있는 소비자잡지 '컨슈머리포트' 평가에서 쟁쟁한 글로벌 기업을 모두 제치고 제습기 분야 1위(대형·소형 부문)를 차지했다.
위닉스의 전신(前身)은 1973년 윤 회장이 서울 성수동에 세운 '유신기업사'다. 영남대 전자공학과를 다니다 중퇴한 그는 자전거·재봉틀 부품, 보온밥솥 회사에 다니며 배운 기술을 바탕으로 전자회사를 차렸다.
처음 만든 제품은 냉장고와 에어컨에 들어가는 '열(熱) 교환기'. 온도가 다른 두 개의 유체(流體)에서 열을 이동하는 방식으로 냉각기 또는 가열기를 만드는 장치다. 당시 국내 시장은 거의 일제(日製)가 장악하고 있었다. 윤 회장은 "냉각기를 만들려면 알루미늄과 동(銅)을 용접해야 하는데, 책도 없고 누구 하나 알려주는 사람도 없어 무작정 수백번, 수천번 실험하면서 기술을 익혔다"고 했다. 그렇게 개발한 열 교환기를 까다로운 품질 테스트를 뚫고 삼성 등 대기업에 납품했다. "조그만 회사가 납품하니까 사람들이 삼성에 무슨 '빽'이 있느냐고 물어요. 난 기술력과 빠른 납기(納期), 싼 가격이란 회장님보다 더 큰 '빽'이 있다고 했죠."
1990년대 후반, IMF 외환 위기가 닥치자 대기업이 냉장고·에어컨 생산을 줄이기 시작했다. 납품 물량이 줄면서 회사도 휘청거렸다. 윤 회장은 "하청업체만으론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2000년 코스닥 등록과 함께 회사 명칭을 '위닉스'로 바꾸고, 대기업이 간과하는 틈새시장에 자체 브랜드를 건 완제품을 만들어 팔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왜 하필 제습기일까.
"냉장고·에어컨 같은 분야에서 대기업과 정면 승부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제습기는 20년 넘게 축적한 열 교환 기술을 응용할 수 있고, 일본·유럽 등 선진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제품이어서 '이거다'라는 확신이 들었죠."
위닉스는 첨단 기능을 넣은 제습기를 속속 내놨다. 2009년 첫선을 보인 '플라즈마 웨이브(plasma wave)' 기술은 공기를 이온화시켜 공기 중에 섞인 먼지와 세균, 바이러스를 정화한다. 소음을 줄이는 것도 위닉스만의 독보적인 기술로 평가된다. 윤 회장은 "소비자들은 제습기에 들어 있는 콤프레서(압축기)의 진동 소음을 가장 불쾌하게 느낀다"면서 "숭실대 연구팀과 함께 소음을 억제하는 기술을 개발, 제습기 전 모델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3년 전 40dB(데시벨)이던 소음이 올해 신제품은 36dB로 낮아졌다.
작년엔 제습 용량이 15L(리터)였지만 올 신제품은 16L로 늘었다. 윤 회장은 "매년 나오는 제습기가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우리는'숫자 1'을 높이거나 낮추기 위해 모든 것을 건다"면서 "60여명의 연구진이 1년 내내 파고든 결과가 제습용량 1L를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 제품은 아직 15L 용량이라고 한다. 온종일(24시간) 제습기를 틀었을 때 위닉스 제품이 타사 제품보다 습기를 1L 더 많이 빨아들인다는 뜻이다.
제습기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대기업들의 공세도 거세다. 윤 회장은 "대기업엔 제습기가 여러 제품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우리에겐 이게 전부"라며 "대장간에서 시작해 300여년간 명맥을 이어온 독일 헹켈의 '쌍둥이칼'처럼 위닉스도 100년, 200년 이상 가는 글로벌 제습기 전문 기업으로 키워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