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자유주의 경제학자이자 '박정희주의자'인 좌승희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가 북한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하는 바탕 위에서 압축 성장을 지원하자는 주장을 내놔 관심이 쏠린다. 12일 좌 교수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전국경제인연합회·북한연구학회 등 9개 단체가 주최하고 매일경제신문사가 후원해 서울 세종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광복 70주년 기념 평화통일 대토론회'에서 이 같은 주장을 펼쳤다. 좌 교수는 민주평통에서 경제과학환경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은 국내 보수 진영이 대부분 급변 사태 발생에 따른 북한 '붕괴론'에 힘을 싣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 보수학자 '북한 체제 보장' 주장
이날 좌 교수는 '대동강의 기적을 향하여'라는 주제 강연에서 "이제는 북한 주민과 한국 그리고 북한 지배세력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협력과 통일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강연에서 좌 교수는 "역대 정부 대북 정책은 체제 전환을 유도하는 정책이며 궁극적으로는 북한 지배층을 몰아내는 것을 의미했다"면서 "북한 당국은 이러한 위험을 안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수용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체제에 충격을 가하고 흔들어 붕괴를 유도하는 것보다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에 대해 정치적 지배력과 경제적 기득권을 용인해야 북측도 체제 안정을 바탕으로 적극적 경제 발전 정책을 펼치고 한반도 협력에 호응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북한 정권에 대해 '개발독재'를 인정하며 남북 경협을 추진하자는 적극적인 제안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 보수 진영 핵심 이론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영남대 박정희새마을대학원' 석좌교수 직함을 가진 좌 교수가 김정은 독재 체제에 대한 용인과 협력을 주장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같은 좌 교수 주장은 한국 경제가 저성장을 극복하고 북한도 경제 부흥을 이루기 위해 남북 양측이 서로를 용인하고 협력을 가로막는 '규제'를 철폐하자는 의미로도 읽힌다. 이는 평소 '규제 철폐'에 대해 강한 신념을 밝혀온 좌 교수 지론과도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 "대동강의 기적으로 인권 향상 "
좌 교수는 한국 개발연대, 지난 30년간 중국과 같이 다소 비민주적 정치 체제 아래에서 '정부가 주도하는 어느 정도 통제된 시장경제 체제'를 통한 발전 전략을 북한 경제를 도약시킬 모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한강의 기적' 노하우를 바탕으로 '대동강의 기적'을 북한 경제의 새로운 비전으로 정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개발독재를 인정하며 '대동강의 기적'을 이루는 것이 남북 모두에 가장 경제적으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좌 교수는 "핵 개발은 잃을 것이 없는 자의 '자폭 수단'과 같아 경제 개발이 본격화하고 '잃을' 것이 생기면 사실상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대동강의 기적'으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북한 주민 지지가 높아지고 1인 체제가 정착되면 무리한 인권 침해 등 문제도 점차 완화돼 '선의의 독재'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그는 '대동강의 기적'을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박정희 대통령 때처럼 정부가 신상필벌(信賞必罰) 경제원칙을 철저히 확립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좌 교수는 "북한은 향후 성공하는 기업들을 '영웅화'하는 국민적 자본주의 경진대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역량 있는 국민과 젊은이들을 끝없이 기업전선에 이끌어내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북한판 정주영·김우중을 키워내 이들이 북한에서 경제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심리적 초석을 닦자는 이야기다.
◆ "남북 관계 개선해야 본격 협력 "
이날 토론에 나선 대북 전문가들은 좌 교수 주장에 대해 공감을 표하며 '대동강의 기적'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충실한 토대를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폈다.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는 "'대동강의 기적'을 우리가 원하는 남북 관계와 통일경제로 이끌기 위한 '전략적 구상'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점진적 과정을 통해 북한의 '한국화'가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북한의 한국화는 기본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교류협력 증진을 통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다른 방법은 사실상 존재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승률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 이사장은 '대동강의 기적' 프로젝트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남북이 함께 길러야 한다는 견해를 펼쳤다. 북한 내 유일한 사립대학이자 최초의 남북 협력 대학인 '평양과학기술대학교' 부총장으로 재직 중인 이 이사장은 "평양과기대는 현재 북한 정부와 주민들에게 '국제화의 등대'이자 경제 개선을 위한 인력을 양성하는 산실로 존중받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