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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신우철교수  
--- 사무국 --- 4331
글쓴날짜 : 2005-08-05
[동아광장/신우철]권력은 나누어지지 않는다
[동아일보 2005-08-01 05:23]

서울 사돈과 영남 사돈이 심심파적 삼아 끝말잇기를 했다. 서울 사돈이 “장롱!” 하자 영남 사돈이 “농갈라 묵기!” 하는 바람에, 서울 사돈이 어리둥절했다는 썰렁한 농담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심지어 부자간에도 ‘농갈라 묵기(나눠 먹기)’가 안 된다는 것이 권력이라는 요물이다. 더운물과 찬물이 섞이면 미지근한 물이 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지만, 강자와 약자가 섞이면 강자의 지배가 관철되는 것이 인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나눠 먹기를 시도했던 숱한 헌정체제가 실패로 돌아갔다. 대통령직의 유일성을 요체로 하는 대통령제하에서 실패의 위험성은 더욱 높아진다.


우루과이의 콜레히아도(collegiado) 권력 분점 체제가 그러했고, 키프로스의 3 대 7제 인종비례 정부가 그러했으며, 통일 직후 남북 예멘의 대통령평의회 체제도 그러했다. 심지어 키프로스와 예멘의 경우 유혈 충돌로 치닫기까지 했다. 프랑스의 좌우 동거정부나 칠레의 정파별 무지개내각도 그럭저럭 ‘굴러간’ 수준이었지 성공적인 정부라 할 수 없었다. 정치세력 간의 연립을 통하여 행정부를 구성하는 방식은 의원내각제에서 흔히 관찰되지만, 대통령제에서 ‘소수파 대통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를 응용할 때는 실패한 사례가 많았다.


‘분점정부’하에서 대통령은 의회 다수 세력 유지에 협조하는 대가로 행정부 요직을 파트너에게 제공하게 된다. 이렇게 자리를 얻은 행정책임자가 정책 실패를 초래해도 연정 유지를 위한 필요 때문에 대통령은 그를 해임하기가 어렵다. 의원내각제의 장점인 ‘책임정치’가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연정 유지라는 정치적 고려에 따라 행정부 요직이 임명됨으로써 대통령제 최대의 장점인 ‘전문행정’의 실현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연정방식을 대통령제에 응용한 분점정부는 이처럼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의 ‘열성교배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소수파 대통령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분점정부를 구성했던 김대중 정부는 그 대가로 행정부 요직의 상당수를 자민련에 헌납했다. 나아가 지역주의로 인해 적지에서 낙선한 ‘아군들’을 위해, 또 그의 집권까지 너무 오랜 세월을 ‘굶주린 동지들’을 위해 자리를 챙겨주어야 했던 사정까지 작용해 당시는 ‘정객들’의 행정부 진출이 유독 현저했다. 외환위기의 극복만으로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리라 여겨진 김대중 정부에서 숱한 정책실험이 실패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10개월 남짓마다 장관이 갈리는 ‘엽관’의 와중에 전문행정은 종적을 감추었던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대연정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김대중 정부의 경험을 왜 새삼 반복하려는가. ‘각론’에 여념이 없어야 할 임기 3년차에 왜 생뚱맞은 ‘원론’ 타령인가. 그 고차원적인 ‘정치공학’의 셈법이 헌법학자의 둔한 머리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대통령을 내 손으로’라는 구호에 담긴 1987년 6월의 함성, 헌법 제67조의 존엄한 약속을 직선대통령이 스스로 외면하는 역설적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개혁성향의 단임 대통령에게서 흔히 관찰되는 ‘이것만은 해결하고 나가겠다’는 ‘완결의 욕망(vouloir conclure)’ 증후군인가.


노 대통령의 업적이 이미 적지 않다. 잡초 같은 평민 정치인이 집권한 것 자체가 첫째 업적이요, 정치와 검은돈의 연계 고리를 자른 것이 둘째 업적이요, 지방분권과 사법개혁을 시도한 것이 셋째 업적이다. 아쉬운 시점에서 자제해야 한다는 권력의 한계효용법칙을 지킬 때 성공한 대통령은 탄생할 수 있다.


임기의 반환점을 앞둔 지금, 체감하는 권력의 효용을 유지하는 방법은 ‘선택과 집중’뿐이다. 메뉴 많은 음식점치고 장사 잘되는 곳 못 보았다. 지방분권과 사법개혁 중 어느 하나도 작은 일이 아니겠지만, 지방 변호사 출신 대통령으로서는 남은 임기 전부를 걸어볼 만한 메뉴가 아닐까. 쪼그라드는 권력을 여기저기 ‘나눠 먹기’ 한다고 권력의 ‘이어 먹기’가 성공할 수 있을까.


신우철 영남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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