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모는
"나보고 묻지 말고 너의 방 책꽂이에 있는
공책한테 물어봐라 잘 알게다”며
수화기를 내팽기치듯 끊어버렸다.
아들은 가계부를 펼쳐 보고 어머니의 역정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알수 있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싸우자니 판사 집에서
큰 소리 난다 소문이 날거고
때리자니 폭력이라 판사의 양심에 안되고
그렇다고 이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사태 수습을 위한 대책마련으로
몇날 며칠을 무척이나
힘든 인내심이 요구 됐다
그러던 어느날 바쁘단
핑계로 아내의 친정 나들이를 뒤로 미루던
남편이 처갓집을 다녀오자는 말에
아내는 신바람이나
선물 보따리며 온갖
채비를 다한 가운데 친정 나들이
길 내내 입가에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고
그럴 때마다 남편의 마음은 더욱 복잡하기만 했다.
처갓집에 도착해
아내와 아이들이 준비한 선물 보따리를
모두 집안으로 들여 보내고 마당에 서 있자
장모가
“아니 우리 판사 사위
왜 안들어 오는가”하며 쫓아 나오자
사위가 한다는 말이
“촌년 아들이 왔습니다”라고 대꾸하자
그 자리에서 장모는 돌하루방 처럼
굳은 채 서 있자
“촌년 아들이 감히 이런 부자집에
들어 갈 수 있습니까”라 말하고
차를 돌려 가버리고 말았다.
그날 밤 시어머니
촌년의 집에는 사돈 두 내외와 며느리가
납작 엎드려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 달라며 빌었다.
이러한 일이 있고 난 다음달부터
촌년 10만원은 온데간데 없고
"시어머니의 용돈 50만원" 이란 항목이
며느리의 가계부에 자리했다.
이웃 속에(in)
함께(with)
위해(for) 살아가는
우리의 본질은 무엇 보다도
진실함이라 여겨지며
아들의 우아한 용서에
행복의 나무는 풍성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