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라고 불러야 돼? 감독이라고 불러야 돼?”
지난 4월 신태용 올림픽대표팀(이하 올림픽팀) 감독이 축구국가대표팀(이하 A대표팀) 코치직을 겸직하는 것이 결정됐을 때 가장 난감했던 것은 이름 뒤 붙는 직함을 무엇으로 하느냐였다. 지난해 9월 A대표팀 코치로 합류하며 성남일화(현 성남FC) 감독에서 물러난 지 1년 9개월 만에 현장으로 돌아온 ‘신태용 코치’는 아시안컵이 끝난 직후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사임한 올림픽팀 감독으로 부임하며 다시 ‘신태용 감독’이 됐다. 그러나 2개월 뒤 울리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신태용 코치’의 필요성을 동감함에 따라 겸직을 하게 됐다. 축구협회 홍보팀에서는 감독과 코치를 결합한 ‘감치’라는 새 직함을 만들어냈다. 혹자는 A대표팀의 2인자이자 올림픽팀의 1인자라는 점에서 1.5인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감치’로 불리든, ‘1.5인자’로 불리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내년 1월까지는 감독 신태용으로서의 역할이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올림픽팀을 맡은 뒤 3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AFC U-23 챔피언십 예선 3경기를, 5월 열린 베트남 초청경기에서 2경기를, 6월 열린 프랑스와 튀니지와의 친선경기를 제외하면 A대표팀에서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는 역할이 그의 주된 일이었다. 하지만 10월부터 슈틸리케 감독 옆에는 신태용 코치가 없다. A대표팀이 10월에 쿠웨이트(월드컵 예선), 자메이카(평가전)를 상대하고 11월에 미얀마, 라오스(이상 월드컵 예선)를 상대하는 동안 올림픽팀도 자신들의 일정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10월에는 국내에서 열리는 호주와의 두 차례 평가전이, 11월에는 중국에서 열리는 친선대회에 참가한다. 12월에는 국내에서 합숙훈련을 진행하고 1월에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AFC U-23 챔피언십에 나선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7회 연속 본선에 진출했고, 지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동메달까지 땄던 역사에 뒤지지 않는 성과를 내는 것이 감독 신태용이 완수해야 할 임무다.
만 38세에 감독으로 시작해 만 40세에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성공한 자칭타칭 ‘난 놈’ 신태용은 올림픽팀과 함께 할 지금부터의 도전을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만에 하나 실패할 경우 책임을 묻게 되는 자리지만 그는 “지도자의 삶은 어차피 도박의 연속이다. 그걸 차례차례 넘는 게 이 직업의 묘미 아닌가?”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무엇보다는 지난 1년 간 슈틸리케 감독을 보좌하며 보낸 2인자로서의 시간은 지도자로서 그의 시야와 사고의 폭을 한층 넓혀줬다. “슈틸리케 감독님 밑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배움에 내가 가진 철학과 소신을 입혀 올림픽팀에서 결과를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한 ‘감치’ 신태용의 두 얼굴을 직접 만나 확인해봤다.
■ 2인자로서의 1년: 눈은 넓어지고, 생각의 폭은 커졌다
신태용은 지도자 생활의 첫 발을 1인자로 내디딘 케이스다. 2005년 호주 A리그의 퀸즐랜드 로어(현 브리즈번 로어)에서 현역 생활을 마친 뒤 필드에서 주로 활약하는 기술코치를 맡은 게 전부였다. 2008년 말 자신이 현역 생활을 모두 쏟은 성남의 감독으로 취임하며 사실상 그의 지도자 생활이 시작됐다. 홍명보, 황선홍, 최용수마저도 각급 대표팀과 프로팀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파격이었다. 성남의 레전드로서 팀의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수뇌부와 교감하고 있으며, 주장으로서 긴 시간 리더십을 뽐냈지만 그것은 지도자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과연 초보 감독 신태용이 잘 할 수 있을까? 그 의문에 신태용은 1년 만에 답을 했다. 데뷔 시즌인 2009년 K리그 챔피언십까지 진출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리고 1년 뒤 AFC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하며 단숨에 젊은 명장으로 올라섰다. 2011년에는 FA컵 우승을 차지하며 한번 더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2012년 팀 리빌딩에 실패하자 쿨하게 감독직에서 물러났지만 짧은 시간 감독 신태용이 보여준 임팩트는 강렬했다.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1년 9개월 동안 해설위원 등으로 외도를 했던 그는 브라질월드컵이 끝난 뒤 현장으로 돌아왔다. 인상적인 것은 줄곧 1인자로 살아온 그가 자의로 2인자의 자리에 갔다는 점이었다. 브라질월드컵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새로 부임한 이용수 기술위원장을 중심으로 새 감독을 찾던 축구협회는 적임자를 찾기 전 이미 보좌할 코치로 신태용을 결정했다. 당시 이용수 위원장은 “감독으로서 좋은 성과를 낸 경험이 있고, 외국에서의 생활도 했다. 나이를 봐서도 외국인 감독을 보좌할 적합한 인물이라 생각했다”며 코치로 선임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1인자로서 단맛을 본 그가 2인자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문표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당시의 선임에 대해 신태용 코치는 “외국인 감독을 선임한다는 분명한 전제 조건이 달려 있었기에 코치직 제의를 수용했다. 만일 외국인 감독이 아니었다면 코치직을 맡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내국인 감독도 나를 원치 않았을 것이다. 외국인 감독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말했다. 한국 축구는 브라질월드컵을 준비하는 4년의 시간 동안 3명의 국내 감독(조광래, 최강희, 홍명보)이 팀을 이끄는 상황이 빚어졌다. 이전에도 월드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 교체는 있었지만 지난 4년 간 벌어진 각종 혼란과 논란과는 비교가 안 됐다. 실패는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처음으로 단 1승도 거두지 못한, 축구팬들에게 너무 낯선 실패는 큰 파장을 일으켰고 축구협회는 2007년 핌 베어벡 감독의 사임 후 7년 만에 다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역대 외국인 감독들을 볼 때 그들을 보좌하는 국내 지도자와의 궁합이 성공을 가른 중요한 요소였는데 선택권을 쥔 이용수 위원장은 능력과 성격을 모두 감안했을 때 신태용을 최적의 인물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했다. 이용수 위원장의 예상대로 슈틸리케 감독과 신태용 코치의 조합은 탁월한 효과를 냈다. 편견 없는 선수 선발과 기량만이 고려되는 팀 내 경쟁 체제는 월드컵 실패로 가라앉았던 A대표팀의 분위기를 다시 끌어올렸다. 수장인 슈틸리케 감독의 강직한 원칙과 운영방식, 한국 축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신태용 코치의 도움이 더해지며 나온 시너지 효과였다. 아시안컵과 동아시안컵은 그런 대표팀 내부의 순환 구조가 성과로 나온 장면이었다. 신태용 코치는 선수들과 함께 운동장에서 뒹굴고, 섞이며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아시안컵 중 닥친 위기를 정면 돌파하며 결승까지 이끌었다. 비록 준우승으로 끝났지만 아시안컵은 무너졌던 한국 축구에 대한 기대치를 되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컸다. 동아시안컵에서도 우승이라는 의미 있는 성과물을 냈다. 재정비를 마친 대표팀은 이정협, 이재성, 정우영, 석현준, 권창훈 등 젊은 선수들을 끌어올리며 경쟁력이 강화됐다.
신태용 코치가 기대한 배울 부분도 채워졌다. 그는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기 때문에 코치들의 생각과 시각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코치가 되고서야 비로서 그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감독과 코치가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하지만 코치들이 생각하는 부분을 잘 수렴할 때 감독의 결정과 선택은 더 빛난다. 신태용 코치는 “슈틸리케 감독님은 코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것을 수렴한 뒤 본인이 최종적인 장고에 돌입한다.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내린 결정이니까 성공할 확률이 높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런 모습을 보며 감독 시절의 나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었나 되돌아 보게 됐다”며 배움을 설명했다. 반대로 감독을 했기에 슈틸리케 감독의 입장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신태용 코치는 “우리 감독님은 장시간의 미팅과 비디오 분석을 좋아한다. 그런데 그게 코치나 선수들 입장에서는 꽤 괴로운 일이 될 수 있다. 그때 코치가 선수들 편을 들며 미팅을 생략하자, 비디오 분석을 짧게 하자고 할 때가 있다. 그런데 그 시간을 위해 감독은 며칠을 밤 새워 준비를 한다. 그래서 다른 코치와 선수들에게 이 시간은 감독님을 존중하는 시간이니 우리가 함께 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그 일례를 소개했다.
슈틸리케 감독과 신태용 코치는 1년간 동고동락하며 대표팀을 다시 국민들의 사랑과 믿음을 받는 팀으로 바꿔놨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둘 사이에 갈등이 있을 거라는 시각으로 여러 루머를 자아낸다. 신태용 코치 역시 주변으로부터 슈틸리케 감독과의 갈등설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지난 9월 소집 때 대표팀 훈련을 하면서 감독님이 내게 휘슬을 맡기고 훈련시킬 수 있는 권한을 줬다. 만일 나와 감독님 사이에 안 좋은 감정이 있다면 그게 가능하겠나?”라며 단숨에 반박을 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슈틸리케 감독을 언급하면서 “슈틸리케 감독님”, “우리 감독님”이라며 꼬박꼬박 존칭을 붙였다. 이어서는 “대표팀의 코치로 가는 게 결정되면서 내가 입을 다물어야 한다는 절대적인 원칙을 세웠다. 외국인 감독이 부임하면 언론에서는 주변의 한국인 코치에게 대표팀 내 정보를 묻게 된다. 당연히 내가 타깃이 될 수 있다. 만일 내가 함부로 얘기를 하면 모든 신뢰 관계가 무너진다. 지난 1년 간 축구협회를 거치지 않은, 내게 개별적으로 전화를 해 물어보는 질문에는 일절 답하지 않았다. 그게 감독님과 나 사이의 신뢰를 유지하게 한 중요한 원칙이었다”고 말했다. 당분간 올림픽팀에 전념해야 하는 신태용 코치를 위해 슈틸리케 감독은 “필요한 도움이 있다면 언제든지 얘기하라. 우리는 한 가족이다. 좋은 결과를 내고 돌아오라”며 성공을 빌어줬다.
■ 다시 1인자로: 이전에 없던 공격축구 보여주겠다
지금부터는 올림픽팀으로 넘어가 신태용 감독을 이야기한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감독 신태용은 꽤 먼 미래에 다시 올 기회였다. 당초 대한축구협회는 이광종 감독에게 올림픽을 맡길 계획이었다. 전임지도자로서 각급 대표팀을 이끌며 U-17 월드컵, U-20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던 이광종 감독은 지난해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며 올림픽까지 가는 탄탄대로를 닦았다. 하지만 이광종 감독의 건강 문제가 발생하며 계획에 큰 수정이 발생했다. 아시안컵 직후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제안한 올림픽팀 감독직을 놓고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깊은 고민에 빠진 신태용 감독은 한국 도착 직후 수락 의사를 밝혔다. 그는 “월드컵까지의 시간 동안은 슈틸리케 감독님을 보좌하는 데만 집중한다는 생각이었지만 뜻하지 않게 제안이 왔다. 워낙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더 신중하게 고려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운명이라고 판단하고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신태용 감독이 이 기회에 대해 신중했던 것은 올림픽으로 가는 길이 험난했기 때문이었다. AFC는 이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부터 기존의 홈앤어웨이 방식의 최종예선이 아닌, 한 곳에 팀들을 모아 놓고 3주 간의 짧은 시간 동안 조별리그와 토너먼트를 치르는 과거의 방식을 부활시켰다. 과거에는 1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벌어지는 예선이었기에 실패를 만회하고, 잘못된 부분을 고쳐나갈 여유가 있었지만 새로운 대회 방식은 한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만들 수 있다. 16개 팀이 참가하는 AFC U-23 챔피언십에서 3위 이내에 들어야 올림픽 본선에 나간다. 이를 위해 팀을 파악하고, 구성원을 모으고 재정비하는 데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월 평가전이 끝나면 올림픽팀은 11월에 중국에서 열리는 친선대회에 참가한다. 거기서 걸러진 선수들을 소집해 12월부터 U-23 챔피언십 준비에 돌입한다. 2차에 걸친 국내 소집훈련을 통해 최종적으로 완성된 올림픽팀은 UAE로 건너가 두 차례 평가전을 갖고 대회가 열리는 카타르 도하에 입성한다는 것이 신태용 감독이 밝힌 앞으로의 일정이다. 한국은 이라크, 우즈베키스탄, 예멘과 함께 C조에 배정됐다. 이라크는 대회 디펜딩 챔피언이고, 우즈베키스탄은 늘 복병이다. 최소 조 2위를 차지해야 토너먼트로 넘어갈 수 있는 상황에서 만만치 않은 상대들이다. 신태용 감독은 “우즈베키스탄과의 첫 경기만 풀리면 자신 있다. 같은 방식인 아시안컵을 코치로서 치른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며 대회를 예상했다. 정작 문제는 선수층, 그리고 소집 문제다. 신태용 감독은 “일단 베스트 11으로 뛸만한 선수들은 확보한 상태다. 문제는 백업을 할 수 있는 선수층이 얇다는 점이다. 3주 동안 최대 7경기를 소화해야 하는데 백업 선수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부분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선수 소집이다. 최근 유망주들이 일찌감치 유럽에 진출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변화상은 각급 대표팀 구성에도 자연스럽게 영향을 미친다. 올림픽팀에도 유럽파가 다수 있다. 이번 10월 소집에도 신태용 감독은 류승우(바이엘 레버쿠젠, 독일)를 비롯해 최경록(상파울리, 독일), 박인혁(FSV 프랑크푸르트, 독일), 지언학(알코르콘, 스페인), 황희찬(FC리퍼링, 오스트리아)을 불렀다. 문제는 이들이 12월 국내 소집훈련과 1월 본대회 때도 문제 없이 합류할 수 있느냐다. “10월과 11월에는 문제가 없다. A매치 기간과 겹치기 때문에 올림픽팀의 차출에도 협조해야 한다. 정작 가장 중요한 12월 소집훈련과 1월 대회 때 그 선수들이 와야 한다. 그 문제는 지금부터 나와 협회가 나서서 구단들을 설득해 풀어야 한다”는 게 신태용 감독의 얘기였다. 특히 올림픽팀은 공격진 구성에 애를 먹고 있다. 국내파 공격자원은 김현(제주) 정도다. 박인혁, 지언학, 황희찬은 소속팀의 협조를 받아야 소집할 수 있다.
이런 행정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신태용 감독은 기대에 차 있다. 오랜만에 자신이 주도하는 그림대로 팀을 꾸리고 원하는 전술을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 축구에서 본 적이 없는 아주 공격적인 축구를 펼치려고 한다”고 말했다. 10월 호주 평가전에서는 그 모습을 완전히 보여주긴 어렵겠지만 11월 소집을 거쳐 12월 합숙을 마치면 자신이 원하는 공격 축구가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고 예고했다. 신태용의 공격축구란 무엇인지 알려달라는 얘기에 그는 약간의 힌트를 건넸다. “나는 양 측면의 풀백이 윙에 가깝게 전진하는 걸 원한다. 윙들은 공격라인까지 올라갈 것이다. 당연히 수비에 부담이 간다. 하지만 그런 축구를 해야 아시아를 돌파하고 본선에서도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그가 구상하는 축구를 경험한 적이 있다. 지난해 9월 슈틸리케 감독이 부임하기 전 감독이 공석인 상황에서 그가 주도해 치른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의 평가전에서 신태용의 그림을 어느 정도 확인했다. 당시 베네수엘라전에서 한국은 강력한 공격축구를 펼쳤다. 반대로 우루과이전에서는 기성용을 쓰리백의 중심에 세우는 유연한 변칙 전술로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줬다. 신태용 감독은 “대표팀에 와 보니 지도자로서 새로운 재미를 느꼈다. 최고의 선수들은 확실히 다르다. 지도자가 원하는 바, 지향하는 바를 잘 이해하고 그걸 만들어낸다. 이번에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서 내가 꿈꿔 온 축구를 그려보고 싶다”고 말했다.
■ 슈틸리케 감독의 가르침: 감독은 희망을 줘야 한다
코치로서 보낸 1년은 감독으로 전념해야 하는 앞으로의 4개월 동안 지도자 신태용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그는 슈틸리케 감독님으로부터 두 가지를 배웠다고 얘기했다. 하나는 지도자로서의 소신이다. 그는 “감독님은 말수가 적고 생각이 깊다. 처음에 만나면 어려운 사람이다. 그러나 내면이 깊다. 자신이 세운 원칙과 소신을 끝까지 지키는 힘이다. 자신이 세운 중심을 유지하며 깊고 신중하게 생각해 최상의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도자는 한 조직을 책임지는 선장이다. 그 무한한 책임감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함께 하는 구성원들에게 계속 희망을 주는 역할이었다. “팀스포츠는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 한 선수의 운명이 결정된다. 내가 뱉는 말 한마디, 결정 하나가 한 사람을 좋은 쪽으로, 나쁜 쪽으로 바꿀 수 있다. 우리 감독님은 계속 긍정적인 쪽으로 향하게 한다. 경기를 뛰지 못해도 내가 뛸 수 있는 희망을 갖게 만든다. 지금은 대표팀 선수가 아니지만 내가 있는 위치에서 잘하면 대표팀이 날 불러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선수들이 굉장히 많아졌다. 그게 대표팀을 정말 강하게 만들었다”는 게 그의 얘기였다.
올림픽팀을 맡은 뒤 감독 신태용은 자신의 축구를 위해 기존의 몇몇 선수를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이광종 감독이 중용하던 선수들이 배제됐으니 당연히 뒷말도 나왔다. 그에 대해 신태용 감독은 “이광종 감독님을 존중하고 존경하지만 지도자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내가 바라는 축구를 하기에 부족한 선수는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단 그 선수에 대한 공개적인 평가는 하지 않는다. 아직 어린 선수고 3, 4개월 사이에 확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내가 그 선수에 대해 안 좋게 평가하면 희망을 잃어버릴 것이다. 신태용이 감독을 하는 한 나는 올림픽팀에 가지 못할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건 있어선 안 되는 일이다. 내가 슈틸리케 감독님에게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은 그런 선수들마저 희망을 버리지 않게끔 만드는 거다”라며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신태용 감독도 슈틸리케 감독이 그랬던 것처럼 현장을 누비며 많은 선수들을 체크하고 있다. 변화하는 선수도 있고, 안 그런 선수도 있다. 속도의 차이일 수 있다. 변화한 선수에게 먼저 기회가 가겠지만 다른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원천봉쇄 되어선 안 된다는 게 돌아온 감독 신태용의 생각이다.
유례 없는 A대표팀 코치와 올림픽팀 감독을 겸직하는 것을 놓고 혹자는 삐딱한 시선으로 신태용을 바라보기도 했다. 올림픽팀에서 실패를 해도 돌아갈 구석을 마련해 놓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였다. 그에 대해 신태용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실패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 감독인 내가 책임을 안 진다면 말이 안 된다. 호주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그 부분까지 다 고려해 결심을 했다. A대표팀 코치직까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다. 여론의 요구를 무시할 수 없다. 슈틸리케 감독님이 그런 여론을 부담스러워 하고, 나의 실패가 A대표팀에서 코치직을 수행하는 데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면 당연히 그것도 물러나야 한다. 어차피 감독은 도박과 같은 거다. 결과로서 자신을 증명하는 자리다. 성공이 줄 성과가 기대되는 만큼, 실패가 주는 벌도 감당해야 한다. 지금 나는 나를 믿고 된다는 쪽에 베팅을 했다. 올림픽 본선에 반드시 갈 거다. 그리고 본선에 가서 런던올림픽 못지 않은 성과를 낼 것이다.”
‘난 놈’, 그리고 한국 축구사 최초의 ‘감치’. 신태용은 2009년과 2010년 그랬던 것처럼 또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할 성공을 만들기로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