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말(馬)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승마는 귀족 스포츠로 인식되고, 경마는 도박의 이미지를 벗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을 뒤흔든 국정 농단이 말로부터 시작됐다. 특혜·부정·비리의 이미지가 말에 덧씌워졌다. 한국마사회는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국정농단 사건 연루돼 이미지 타격
마사회 국민 신뢰 회복하는 게 중요
목장서 말 키우고 경주·체험까지
말산업도 6차 산업 지향해야 성장
경마 역사 95년인데 국제경쟁력 부족
지난달 월드컵 무대서 첫 결선 진출
불법경마 업소 연매출 마사회의 3배
규제·세금 피해 불법 사이트서 베팅
한국마사회가 검찰 수사를 받고 감사원의 감사를 받는 상황에서 이양호 한국마사회장이 지난해 12월 취임했다. 그와 마사회에 지난 100여 일은 어려운 시간이었다. 이 회장은 “마사회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게 중요하다. 검찰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는 동시에 마사회 발전과 승마·경마 발전을 위해 할 일은 꼭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 5일 렛츠런파크 서울 접견실에서 만난 이양호 마사회장은 “승마와 경마가 1·2·3차 산업을 융복합하는 6차 산업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한국마사회]
- 질의 :취임 후 석 달이 지났다.
- 응답 :“(국정 농단과 관련한) 수사를 받고 있다. 의혹은 많았지만 대부분 과장되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게 됐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노이즈 마케팅 같은 거다. 우리가 잘하면 국민이 알아 주실 걸로 믿는다.”
- 질의 :업무는 다 파악했나.
- 응답 :“상황이 썩 좋지 않다. 2011년부터 마사회 연 매출이 7조원대에서 정체돼 있다. 비용은 해마다 늘기 때문에 이익이 점차 줄고 있다.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2300억원이었다. 다른 산업보다는 좋지만 매년 이익이 100억~200억원씩 줄어든다는 건 나름의 문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 질의 :취임 후 가장 중점을 둔 업무는.
- 응답 :“마사회가 사회적 이슈에 연루돼 대외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직원들 사기도 많이 꺾였다. 논란이 됐던 10여 가지 대규모 투자사업의 방향을 재설정하기로 했다. 조직 개편을 통해 분위기도 바꿨다. 또 내부의 젊은 직원들 중심으로 미래발전전략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했다. 경마 고객이 50대 이상에 편중돼 있는데 20~30대에게도 매력 있는 마사회를 만들자는 의도다.”
2011년 ‘말산업육성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농식품부는 말을 신(新)축산정책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이 회장은 “농업이 6차 산업화(1·2·3차 산업을 복합해 높은 부가가치 생산)에 힘쓰는 것처럼 말산업도 6차 산업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질의 :그(말산업의 6차 산업화)에 대한 구체적 추진방식은 뭔가.
- 응답 :“농업은 원료를 생산하고(1차 산업), 가공식품을 만든다(2차 산업). 체험형 농장을 운영하는 게 3차 산업이며, 이것들을 한곳에서 즐기면 6차 산업이 된다. 말을 키우고(1차 산업), 사료·장비 등을 만들어 팔고(2차 산업), 승마와 경마를 즐기는 것(3차 산업)만으로는 부족하다. 지난달 일본 홋카이도의 노던팜이라는 말목장에 다녀왔다. 거기에선 말 생산과 경주·체험까지 이뤄진다. 목장이 하나의 테마마크다.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면 골프를 치고, 3만 달러면 승마를 즐기고, 4만 달러가 되면 요트를 탄다고 하지 않나. (한국의 2016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561달러이지만) 3만 달러 시대를 준비하자는 거다.”
- 질의 :경마산업만으로도 여전히 경쟁력이 있지 않나.
- 응답 :“한국 경마 역사가 95년이지만 국제경쟁력은 부족하다.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총상금 2900만 달러(약 336억원)가 걸린 ‘두바이 월드컵’이 열렸다. 한국 경주마 ‘트리플나인’이 예선과 본선을 거쳐 결선까지 진출했다. 상위권에 들지 못했지만 한국 경마 사상 최초로 월드컵 무대에 섰다. 장기적으로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국산 말을 수출할 단계가 돼야 한다. 그건 시간이 더 걸리는 일이다.”
지난 5일 렛츠런파크 서울 접견실에서 만난 이양호 마사회장은 “승마와 경마가 1·2·3차 산업을 융복합하는 6차 산업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한국마사회]
한국에 있는 경주마는 대부분 1억원 이상 주고 수입해 온다. 두바이 월드컵이나 미국 켄터키 더비 등 세계적 경주에서 우승한 일부 명마(名馬)는 100억원이 넘기도 한다. 은퇴 후에는 씨수말로 변신한다. 이런 씨수말은 그 자마(子馬)들에 대한 기대감으로 100억원을 줘도 살 수 없다. 그래서 명마의 정액 값은 다이아몬드 값과 비교되기도 한다.
- 질의 :경마 인구가 계속 줄고 있다.
- 응답 :“사람들이 경마를 하지 않는 건 아니다. 얼마 전 불법 경마 운영자를 잡았는데 일요일 하루에만 매출 1704억원을 올리고 있더라. 단순 계산으로 연 20조원이 넘는다. 전국 3개 경마장과 31개 장외 발매소를 운영하는 마사회 매출의 세 배 이상이다. 불법 사이트에서는 베팅 제한(마사회는 1회 10만원)이 없다. 또 손님에게 돌려주는 돈(환급률)이 90%를 넘는다고 한다. 그래서 규제와 세금을 피해 불법 경마로 몰리는 것이다. 마사회는 세금(매출액의 16%)과 각종 비용을 빼고 나면 환급률이 73%밖에 되지 않는다. 불법 경마를 단속해 음성적 베팅을 막는 동시에 세금을 낮추는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면 정부 세수는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다.”
- 질의 :그러기 위해서는 경마·승마가 더 친근해져야 할 것 같다.
- 응답 :“과천시에 10년 넘게 살았는데도 경마장(렛츠런파크)에 한 번도 오지 않은 분이 많더라. 한번 와 보시라. 경치도 좋고 먹고 즐길 게 많다. 가족들과 함께 말 구경을 해 보고, 마방도 둘러보시라. ”
◆이양호 한국마사회장=영남대 행정학과를 졸업해 1982년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1983년부터 농림수산부(현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일했고 식품산업정책실장, 기획조정실장을 지냈다. 제25대 농촌진흥청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말 제35대 한국마사회장으로 임명됐다.
■[S BOX] 렛츠런파크서 벚꽃축제·야시장·직거래장터도 열어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경기도 과천시에 있는 ‘렛츠런파크 서울’에서는 매일 밤 야간 벚꽃축제가 열렸다. ‘말(馬) 그대로 벚꽃’이라는 콘셉트로 기획된 이번 축제에 닷새 동안 7만5313명이 찾아 봄나들이를 즐겼다. 야간 벚꽃축제는 여의도 벚꽃축제만큼 유명하지는 않아도 경기도 남부에선 꽤 유명한 4월 야간 페스티벌이다. LED 조명을 받은 야간 경주로가 흐드러지게 핀 벚꽃과 멋진 조화를 이뤘다.
무더위가 찾아오는 7~8월 주말에는 열대야를 날리는 한여름밤의 축제 ‘야간 경마’를 실시해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곳곳에 등불을 달고 야시장을 열며, 젊은 세대를 위한 인디 아티스트 공연도 개최한다.
렛츠런파크 경주로 내에는 세계 최초의 말 테마파크 ‘위니월드’가 있다. 최대 1만 명이 입장할 수 있는 위니월드에 가면 7개 마을에서 60여 종의 롤플레이(역할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또 2030세대를 위한 승마 체험 놀이공간 ‘놀라운지’와 30년 역사의 ‘말박물관’이 있다.
농특산물 직거래장터 ‘바로마켓’도 매주 수·목요일에 열린다.
[출처: 중앙일보] [사람 속으로]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엔 골프, 3만 달러 땐 승마 즐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