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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용(88/체교) ‘사람 냄새’ 진하게 풍겼던 인간 신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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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짜 : 2019-07-23

‘사람 냄새’ 진하게 풍겼던 인간 신태용


(베스트 일레븐)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쪽은 ‘선수 신태용’보다 ‘감독 신태용’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 당시 벼랑 끝에 몰린 상황에서도 세계 1위 독일을 꺾는 ‘카잔의 기적’을 일군 연출가이자 변화무쌍한 전술과 임기응변, 거침없는 화법으로 위기 탈출에 능한 감독이다. 워낙 솔직하고 직설적인 언행 탓에 적잖은 오해도 사긴 했으나 지난해 축구팬들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감독임은 분명하다. 

신태용은 선수로서도 강렬했다. 사실 선수로 남긴 발자취는 더욱 거대했다. 1992년 데뷔 이래 성남에서만 13시즌 간 뛰며 6회 우승을 이끌었고 K리그 통산 401경기, 99골‧68도움을 기록했다. 미드필더로 뛰면서 득점왕은 물론 MVP까지 수상했고 ‘최초’ 기록은 밥 먹듯이 써냈다. 성남의 레전드이자 기록의 사나이 신태용이 K리그에 남긴 족적들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우리는 감독으로, 선수로서 신태용은 쉽게 닿을 수 있지만 ‘인간 신태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베스트 일레븐> 2005년 2월호에 실렸던 신태용과 인터뷰를 통해 사람 냄새 진하게 풍겼던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공개한다. 당시 35세였던 신태용은 소속팀 성남과 갑작스런 ‘재계약 불가’ 의사를 접한 뒤 현역 은퇴 기로에 놓인 상황이었다. 그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에 몇날 며칠을 낙담해 있었지만 마음을 비운 뒤 “팬들에 꼭 전할 말들이 있다”라며 인터뷰에 응했다.

오로지 성남만을 생각했던 신태용 

신태용은 현역 은퇴 시점이 임박했지만 쉽게 축구화를 벗지 못했다. 성남 팬들과 한 ‘약속’ 때문이었다. 신태용은 당시 보유했던 99골‧68도움 기록을 100-700으로 만든 뒤 명예롭게 은퇴하고자 했다. “이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자 성남은 물론 K리그 전체에도 영광스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이유였다. 문제는 구단으로부터 재계약 불가 소식을 접하면서 도전에 빨간 불이 켜졌다. 

그래도 의지는 확고했다. 신태용은 “저는 뛰고 싶습니다. 또 뛰어야 합니다. 성남 유니폼을 입고 피치에 오를 수만 있다면 어떤 방식이든 좋습니다. 전반기만 뛰거나 플레잉코치로도 만족합니다. 혹시 연봉이 문제가 된다면 구단에 일임하겠습니다. 마음을 완전히 비웠습니다”라며 현역 연장 의지를 내비쳤다. 

당시 신태용이 다른 팀으로 이적했다면 도전을 이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성남만을 고집했다. “100번째 골은 반드시 필드골로 넣어달라는 성남 팬들의 부탁에 흔쾌히 그러마 다짐했습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PK골로) 기록을 세우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성남 유니폼을 입고 100골과 70도움을 이룰 겁니다. 그 생각 밖에는 없습니다. 전 영원한 성남맨이니까요.” 

이러한 다짐과 달리 끝내 그는 성남의 피치로 돌아오지 못했고 기록도 거기서 멈췄다. 그러나 신태용은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 성남으로 귀환하며 ‘오로지 성남맨’이라는 팬들과 약속을 결국 지켜냈다. 

축구로 얻은 온정, 축구로 베풀다 

신태용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축구라고 했다. 어린 시절 가정 형편이 여의치 않아 힘들게 축구를 했던 신태용은 선수로 성공을 거둔 뒤 ‘축구를 통해’ 온정을 베풀었다. 

신태용은 선수 시절 남몰래 묵묵히 선행을 베풀어 왔다. 일련의 선행들이 미디어를 통해 밝혀지지 않았고 은퇴 시점에서야 알려졌다. 신태용은 스포츠스타들의 모임인 ‘함께 하는 사람들(함사모)’를 통해 독거노인과 불우이웃을 도왔다. 시즌 중에는 1골 1도움을 기록할 때마다 50만원씩 적립해 불우이웃에 기증했다. 

그러나 이 정도로 성에 차지 않았다. 신태용은 자신의 이름을 딴 ‘신태용 꿈나무장학회’를 설립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7명의 꿈나무들에게 장학금까지 전달했다. 신태용은 “내 인생에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습니다”라고 떠올렸다. “어릴 적 가난해 힘들게 축구를 했는데 주위를 살펴보니 저 말고도 비슷한 상황에서 볼을 차는 친구들이 많더군요.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가난 때문에 축구화를 벗는 아이들이 없도록 하겠다’라는 생각을 품었습니다. 축구를 통해 많은 것을 받았으니 저도 축구로 갚는 것뿐입니다.”

신태용은 선행을 꾸준히 잇기 위해 부업까지 마다하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부업도 열심히 했습니다. 수원과 일산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데 가진 돈이 넉넉해야 부담 없이 도울 수 있으니까요. 저 때문에 아내가 고생이 많았죠(웃음).”

뿐만 아니라 신태용은 장학회까지 설립해 더 많은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는 “받은 만큼 베푸는 것. 이것이 제 신념입니다”라면서 베푸는 자세를 현역 은퇴 후에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해시태구(舊)는 SNS에서 쓰는 해시태그(#)와 한자 ‘옛 구(舊)’를 합친 조어다. 선수나 감독 등 축구인들의 예전 에피소드를 현재 시점으로 재해석한 이야기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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