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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일보CEO칼럼-이시원(주)부천대표이사] 우산 아래서 햇살을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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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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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 |
5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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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짜 : 2009-06-23 |
지난 주 비 내리던 날 오후, 문득 어릴 적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그 시절 우리 집 뒤엔 버려진 밭이 있었습니다. 그 밭에 어머님은 토란을 심으셨고, 친구와 나는 소나기 내릴 때면 토란잎을 따서 우산을 만들어 천방지축 흙탕물을 튀기면서 뛰어놀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찾으시며 밥 먹으라 부르셨지요. 이제 어머니도, 그 그리운 시간도 세월에 스러져간 지금은 그저 아득하기만 합니다.
창문너머로 시선을 돌려 봅니다. 퇴근길 도로는 우산행렬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그 옛날 동요에 나오는 찢어진 우산은 보이지 않습니다.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일주일에 한 번씩은 동네 어귀에서 "우산 고칩니다"는 아저씨의 구성진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말입니다.
그 분은 우산의 살도 이어주고, 꼭지도 다시 박아주고, 또 쪽도 박아주며 감쪽같이 부서진 우산을 새 것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아끼고 귀히 여겼던 우산이 이제는 너무도 흔해져서 부서진 것은 물론이고, 성한 것도 비가 그치면 여기저기에 몇 개씩 버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지금은 홀대받지만, 우산은 과거에는 대단히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우산을 뜻하는 영어 엄브렐라(umbrella)는 '그늘'을 뜻하는 라틴어, 움브라(umbra)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우산은 쓰는 사람을 '보호하다'는 특징때문에 시대적·사회문화적 차이는 있지만 여러 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히 예로부터 왕이나 세도가가 우산을 쓰고 있는 것은 권세의 표징이나 통치권 등을 의미하기도 했지요.
우산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언제인지 확실치 않습니다만 우산은 '일산(日傘)'이라고 불리며왕이나 고위층만 쓸 수 있는 의례용이었습니다. 서민들은 삿갓과 지금의 우비인 '도롱이'를 착용하거나 콩기름종이로 전모를 만들어 비를 막았지요. 일반 국민들이 본격적으로 우산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11년 배화학당에서 학생들의 얼굴을 가리는 쓰개치마 사용을 교칙으로 금지하자 자퇴 학생이 생겨 검정우산을 주어 얼굴을 가리게 하는 조치를 취하면서부터입니다. 이후 다른 여학생과 일반 부녀자에게 크게 유행된 검정우산은 펼쳐진 모양이 마치 박쥐가 날개를 펼친 모양과 같다하여 박쥐우산, 또는 편복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대중화된 우산은, 우산산업의 집적지인 대구에서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약 80%이상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산의 주요부품인 원단을 대구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뿐 아니라, 섬유산업의 신소재 개발로 인해 발수성이 뛰어난 제품을 만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섬유산업현장에 있어서인지 나는 새로운 우산을 발견하면 늘 뒤집어 보고 물을 뿌려 보며 뛰어난 발수성에 새삼 감탄하기도 합니다. 우산은 이제 예전보다 뛰어난 기능성과 함께 다양한 디자인을 지닌, 단순히 비를 피하는 도구가 아니라 멋을 창출하는 패션 소품이 되는 등, 대구의 특화산업이 되어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습니다.
지금 제 옆에는 안쪽에 맑게 갠 하늘이 그려진 디자인 우산이 있습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결코 맑은 마음으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요즈음, 이런 우산을 한번 써보시는 것은 어떠십니까. 우산 하나 펼친다고 고민과 근심을 다 막을 수는 없지만 잠시 이 우산 아래에서 햇살을 상상하면서 희망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이시원 (주)부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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