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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삶]‘제2 교육자의 길’ 걷는 조승자 서울방송예술종합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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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방송예술종합학교 조승자 교장이 제자가 만들어 보낸 수공예 작품을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
“청소년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으면 합니다.”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서울방송예술종합학교 조승자(65·여) 교장. 2005년 교직 정년퇴임 후 지난해 3월 개교한 예술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조 교장은 자신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했던 시절이 떠오르는 듯 이같이 말하며 눈시울 붉혔다.
조 교장이 퇴임 2년 만에 교육계로 되돌아온 것은 학생들에 대한 무한한 사랑 때문이다.
조 교장은 “40년간 교직에 있으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학생을 많이 보지 못했다”면서 “하지만 음악과 댄스, 방송 분야 등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을 보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온 열정을 쏟아내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 정규 교육과정은 이런 학생들이 자기의 ‘끼’을 발산하고 계발하는 데 적절치 않다”며 “예술 분야로 진출하려는 학생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겠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개교한 예술학교는 정원이 20명으로, 고등학교 재학생 중 음악·댄스·방송 등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1년씩 위탁받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다. 지난 23일에는 1년간 수업을 받은 학생들의 졸업식이 처음으로 치러졌다.
조 교장은 부임 초기 정규학교에서 말썽을 일으켜 ‘문제아’로 낙인찍힌 학생들만 선발해 우려를 자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모두 방송기술과 성우, 연기, 댄스 등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했고, 교육 과정을 아무런 문제 없이 마쳤다.
그는 “학생들이 꿈을 실현하고 싶어도 주변환경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루기가 어렵다”며 “그러나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방향으로 교육환경을 바꿔 주면 학생들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열정을 쏟을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의 경험담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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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서울방송예술종합학교 조승자 교장(왼쪽에서 두번째)이 졸업식 후 학생들과 함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조 교장이 이 같은 교육관을 갖게 된 동기는 교사가 되기 위해 어렵게 공부한 자신의 생생한 경험이 토대가 됐다.
일본에서 2남8녀 중 다섯째로 태어난 조 교장은 1945년 광복을 맞아 가족과 함께 귀국해 경북 청송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6·25전쟁으로 집이 파괴되는 등 어려운 살림에도 ‘공부는 꼭 해야 한다’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초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1학년 때 만난 담임선생은 그에게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었다.
담임선생은 도시락을 제대로 가져오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식사 때나 수업을 마친 뒤 끼니를 챙겨 주었다. 특히 몸이 약하면서도 공부를 잘한 그에게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이 같은 배려 속에 조 교장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분야의 공부를 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교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가정 형편으로 중학교 졸업 이후 곧바로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대구에 있는 한국나이롱(현 코오롱)에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학업을 포기하지 않고 주경야독으로 꿈을 키웠다.
그는 많지 않은 월급으로 오빠의 대학 등록금까지 책임져야 하는 어려운 처지였지만, 청구대(현 영남대)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1966년에는 임용고시에 합격해 어릴 때부터 간직해 온 교사의 꿈을 이뤘다.
조 교장은 “고등학생 때 책을 많이 보고 싶었지만 책 살 돈이 없어서 신문을 구독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도 신문을 매일 본 것이 대학 시험과 임용시험 등을 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회상했다.
조 교장은 서울로 올라와 행당여중, 성수중, 여의도중, 오남중 등에서 교편을 잡은 뒤 구로구 경인고 교장을 끝으로 2005년 정년퇴임했다.
그는 학생 교육 외에도 학부모들을 교육하는 데도 힘을 쏟았다. 한 학기에 한두 차례씩 학부모들이 유명 지식인들의 교양강좌를 들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농촌계몽운동의 선구자였던 유달영 박사, 철학자 김형석 교수 등이 조 교장의 초청을 받은 인사였다.
또 학부모 합창단과 수공예반, 봉사활동단 등을 조직해 학부모들이 공부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모습 등을 자녀들에게 보여줬다. 이 같은 모습을 보고 자녀들이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조 교장은 “학생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어른들이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면서 “학부모들이 죽을 때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도록 평생교육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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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입력 2008.02.28 (목) 12:35, 최종수정 2008.02.28 (목)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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