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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날짜 : 2008-03-25 |
"먹고 살 만한 386의 부채의식 때문에 맡았다"
19일 발표된 통합민주당 외부 공천심사위원들의 면면은 일단 독특하다.
평생을 재야사학자로 일관해온 이이화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이 있고, 부천테크노파크에서 음향기기 제조업체를 경영하고 있는 중소기업인인 장병화 위원이 있다. 장 위원은 일제시대 광복군으로 활약했던 장이호 선생의 아들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부회장을 지냈다. 인병선 위원은 '껍데기는 가라'를 쓴 고신동엽 시인의 부인으로, 짚풀문화 운동을 벌여온 민속학자이자 시인이다.
이들중 가장 젊은 박경철 대한의협 정책이사(44)의 이력도 이들에 못지 않게 튄다. 영남대 의대 83학번으로 경북 안동에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현직외과 의사이고,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등의 베스트셀러를 낸 작가다. 또 투자전문 방송을 진행하고 있는 주식투자전문가이며, 20여개 매체에 글을 쓰고 있는 칼럼니스트다.
정치와는 별 관계없이 잘 살아온 그는 왜 통합민주당의 공천심사 작업에 참여했을까.
20일 오전 여의도에서 만난 박 위원은 "386세대 중 비교적 먹고살 만한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공통의 부채 의식 때문에 책임을 맡게 됐다"고 답했다. "시대상황에 투철한 편은 아니었지만 묘한 부채의식과 죄의식이 함께 있다"는 것이다.
'신의성실의 원칙'때문이라고도 했다. 자신이 쓴 글의 독자와 방송시청자, 그리고 400만명의 블로그 방문자들과의 관계에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정치권에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이 신의성실을 다하는 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유일한 공천기준은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인가'
그는 공심위가 공천심사에 대한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같은 외부인사들은 '보도용' '분장용'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정치권 내부논리에는 관심없다. 오로지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냐, 아니냐로 판단하겠다"고 '자신만의 공천 기준'을 제시했다. 또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에 대해 "손학규·박상천 대표가 들어와도 자기 생각을 유지할 수 있는 분"이라며 "그렇게 강단있는 분을 오랜만에 만났다"고 높이 평가했다.
'정치를 할 생각이냐'는 질문에는 주식투자 전문가답게 "나는 모르는 종목에는 투자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다음은 박 위원과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 어떻게 공심위원을 맡게 됐나.
"난데없이 박재승 위원장님이 맡아달라고 해서 처음에는 웃었다. 펀드매니저 추천하는 것이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좋은 정치인 추천해달라는 것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무 모르는 사람보고 나무를 다듬으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데 박 위원장님이 보편적인 시민의 관점에서, 의사와 투자·금융 분야라는 다양한 직역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된다고 하셨다. 지금까지 정치인들끼리 정책을 만들어서 해온 것이라면 이번에는 국민들이 요구하는 사람들이 맡아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씀이었다. 보통 시민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말에 더 거절할 수가 없었다. 2월 초순에 제안 받고, 일주일 정도 고민했다."
- 박 위원장과는 어떤 인연인가.
"박 위원장님과는 알긴 아는데 깊은 친분이 있는 건 아니고, 평소 존경하는 사회 어른이다. 이번 과정에서 인간적으로 매료된 측면이 있다. 저보다 25세가 많은데 확고부동한 철학이 있다.
공심위의 외부인사들 전체가 모이는 것은 다음 주부터다. 물론 개별적으로 만난 적은 있다. 박재승 위원장이 7인7색을 유지하려는 것인데, 잘하시는 것이다. 공천심사가 25일부터 시작하는데, 가능하면 빨리 하고 사전심사는 안 한다고 한다. 뒤늦게 신청하는 사람들에게 불균형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떤 원칙보다는 컨센서스(공동체 구성원의 일반적인 동의)를 형성해가는 방식이 될 것이다. (외부 공심위원 중에) 정해구 교수 빼고 정치를 아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전체의 의사를 모으는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박재승, 손학규·박상천이 와도 자기 생각 지킬 사람"
- 당 내부인사들은 정치경력이 만만치 않은 사람들인데.
"박 위원장에게 매료됐다고 했는데, 손학규 대표나, 박상천 대표가 들어와도 자기중심과 자기 생각을 유지해나갈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그렇게 강단 있는 분을 참 오랜만에 만났다.
- 이런 저런 활동이 많은 것 같다.
"<한겨레> <한경 비즈니스> <신동아> <좋은 생각> 등 잡지와 사보 등 26곳에 고정 칼럼을 쓰고 있고, MBN에서 프로그램 이름은 바뀌었지만, 7년째 경제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기꾼 형태의 직함(웃음)으로 자문위원, 전문위원 등 20여개 정도 하고 있다. 고정급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제 직업은 의사이고, 투자평론가다."
- 진료할 시간은 없겠다.
"화·수·목·금은 서울에 있고, 토·일·월은 안동에서 진료하고 있다."
- 통합민주당과는 인연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당원도 아니다. 다만 당에 관여한 분들 중에 김근태 의원처럼, 꼭 정치인으로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제가 존경하는 분들이 있었다. 김 의원님은 복지부장관 시절에 제가 의사협회 임원으로 만났는데, 제 책 <아름다운 동행>에 추천사도 써주셨고, 그런 관계 때문에 (김 의원이 이사장인) 한반도재단에 100여명 이사 중에 한 명으로 참여하고 있다."
- 직접 정치를 할 것이라면 모르지만, 의사이고 금융전문가가 공천심사위원 맡는 게 사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재미는 있을 수 있겠지만.
"저한테는 계량 불가능한 마이너스다. 제가 민주당의 정체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비쳐질 것이기 때문에, 제 직업의 속성상 마이너스다. 색깔이 입혀지지 않겠나. 저를 아는 지인 전원이 말렸다."
"신의성실원칙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맡았다"
- 그런데 왜 맡았나.
"살아가는 데는 모두 '신의성실의 원칙'이 있다고 본다. 제가 속해 있는 그룹에서 제 목소리(금융 쪽이지만)를 듣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은, 나름의 혜택을 받은 것인데, 내가 그들의 의견을 전달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제 책의 독자와 방송시청자, 제 블로그를 방문한 4백만명이 있는데 저는 그 분들과의 관계에서 이익을 얻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도 하나의 신의성실의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개인투자자 권익보호활동과 글 쓰는 일로 상당히 많은 대중들의 시각을 전달하는 사람이 됐다. 저로서는 일반대중의 시각을 전달하는 것이 신의성실의 원칙을 다하는 것이다. 정치도 그랬으면 좋겠다."
- 다른 당에서 공심위원 제안을 했다면 맡았겠나.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국회의원이라는 것이 자기들 그룹에서는 색깔과 정강이 일치하는 사람들이지만, 국가입장에서는 하나의 당이다. 지금처럼 한나라당 독주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는 견제가 필요하다. 반대로 한나라당이 밀리는 상황에서 제안이 왔다면 균형 잡는 차원에서 좋은 사람이 나설 수 있도록 돕는, 그런 부분에서 고려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정당의 정강정책과는 다른 제 정체성이라는 게 있다. 저는 지금 사회적으로 주류에 속하지만, 태생이 아주 가난한 공무원 아들이고, 자수성가한 편이기 때문에 서민적 정서가 강하다. 아직까지 평균으로 놓고 봤을 때, 평균 이하 쪽으로 시각이 많이 간다.
그게 잘 먹고 잘사는 사람으로서 죄의식일 수도 있고 안타까움일 수 있다. 물론 관심 갖고 있는 정도지 사회운동가는 아니다. 386세대 중 비교적 먹고살 만한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공통의 부채 의식 때문에 책임을 맡게 됐다. 제가 83학번이다. 어려운 시대를 관통한 세대다. 시대상황에 투철한 편은 아니었지만 묘한 부채의식과 죄의식이 함께 있다."
- 386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미숙성이 안타깝고, 조금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있다."
- 한나라당이 제안했다면?
"노 코멘트다. (웃음) 다만, 통합민주당 쪽이 잘하는 것도 있고 한나라당이 잘하는 것도 있겠지만, 통합민주당이 잘하는 쪽이 조금 더 많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우를 가르는 기준은 복지에 대한 비중이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저는 왼쪽이지만, 그 밖에 제 나와바리(영역)와 하는 일은 시장경제의 과실을 따먹는 사람이다."
"공심위에 전권 안 준다면 우리는 보도용일 뿐이다"
- 자신만의 공천기준이 있다면.
"제 역할 지극히 제안하고 있다. 정치논리는 관심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다. 누가 어느 계보다 그런 부분은 하등 관심 없다. 짧은 시간에 알 수도 없을 것이다. 제가 이 것 하나는 볼 눈이 있다. 내가 존경할 만한 분인가, 우리나라의 대표선수로 내보낼 만한 분인가 하는 것이다.
저는 오로지 한 목소리만 낼 것이다. 존경하고 사랑할 만한 분인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가장 큰 비극은 영웅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웅을 기다리다 지쳐서 초인을 기다리는 상황이 됐다."
- 박재승 위원장은 공심위에 공천심사에 대한 결정권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지극히 사적인 제 견해다. (박 위원장이 말한 것처럼) 그렇게 안 하면 의미가 없다고 본다. 주식시장에서 보면 아무리 주가가 저평가 돼있어도 평가는 시장이 하는 것이다. 민주당은 미래가치보다 저평가된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시장에서는 싼값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제 값을 받으려면 왜 저평가돼 있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 이유를 지금 당내 논리로 알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바꾸자고 하지만, 자기논리로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마누라 빼고 다 바꾸자고 했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안 바뀌었다는 게 삼성의 비극이다.
정당을 바꾸자는 말은 많은데 그 말하는 사람이 바뀌었나. 그래서 외부인사 중심으로 공심위가 구성되고, 저 같은 사람이 들어가는 희한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런데 전권이 안 주어진다면, 우리는 분장용, 보도용 밖에 안 되는 것 아닌가. 저희로서는 인격살인당하는 것이다. 저는 저잣거리 장사꾼이지만 다른 외부인사 여섯 분은 그 분야에서 성실하게 원칙 갖고 살아온 분들이다."
- 박 위원장은 비례대표 추천권도 요구했는데.
"개인으로 왈가왈부할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당조직 논리 완전히 깔아뭉개기는 어렵겠지만, 국민의 눈에 달라졌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물은 비등점이 넘어가야 끓는다. 비례대표 추천권이 그 비등점인 것 같다. 외부인사 중심 공심위 구성은 찬물이 미지근해지는 것이고, 비등점은 비례대표 공천권이다."
(기사를 쓰고 있는 중에, 통합민주당 최고위가 공천심사위원회와 비례대표후보자 선정위원회는 별도로 두기로 하되, 비례대표 선정위원회의 위원장은 박재승 위원장이 겸임하기로 했으며, 위원구성과 운영 방법은 손학규, 박상천 대표와 박재승 위원장이 상의해서 진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정치는 모르는 종목... 투자 안한다"
- 정치 할 생각이 있나.
"정치가 어떤 레버리지(지렛대)를 갖고 있는지 모른다. 다른 영역에서 투자하는 것이 아웃풋(결과치)이 크다고 본다. 관심도 없고 생각한 적도 없다. 나는 모르는 종목에 투자하는 사람 아니다."
- 외부인에게 공천심사를 맡겨야 하는 우리 정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죽어봐야 저승을 안다'는 말이 있다. 소위 말하는 개혁세력이 정권 잡았다가 실패했는데, 러시아의 '브나로드 운동'이 실패한 것처럼 대중을 계몽대상으로 봤기 때문이다. 우월감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번에 (통합민주당이) 사는 방법은 그런 우월적 자세가 아니라 대중과 같은 눈으로 보는 것이다. 정치를 안 하겠다는 방식이 아니라, 당신들의 얘기들 듣겠다는 것 그런 역지사지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2008.02.21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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