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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무더웠던 올여름 우리는 15권의 구술자서전을 간행하는 데 매달려야 했다. 거의 4000쪽에 이르는 이 작업은 2002년 7월에 결성된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단장 박현수 영남대 교수)의 프로젝트 중 하나로서, 구술자와 기록자가 만나 면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구술을 받아 적고 정리하는 데만 꼬박 1년여의 시간이 소요됐고, 우리에게 원고 형태로 제출되기 시작한 것은 올봄의 일. 장장 4년여에 걸친 대장정을 일단락한 셈이다.
‘한국민중구술열전’은 세계사에서 유례없이 급격한 변화를 보여준 우리의 20세기 생활역사를 기억하고, 기록하고, 해석하고자 기획됐다. 이 작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온 우리의 현실에서 이 시대의 증인인 민중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그것을 책의 형태로 남기자는 목적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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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계화 눈빛출판사 편집팀장 |
그러나 이 책의 교정과 편집 진행은 산 너머 산이었다. 첫 번째로 접수된 원고는 대구의 어느 시장에서 가게를 하시는 성송자 할머니의 원고였는데, 시종일관 심한 경상도 사투리가 튀어나오고 구술 내용의 앞뒤도 맞지 않아 난감했다. 연이어 들어온 원고들도 전국 팔도 사투리의 경연장이었고, 인생사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정리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일 수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전·현직 직원을 총동원해 이 열전의 1차분 15권을 무사히 출간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전기나 열전은 이름을 남길 만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해왔다. 하지만 이 열전은 그야말로 이름 없는 민초들이 엮어 나가는 20세기의 역사이며 인간사이다. 책의 출간으로 우리 출판사가 파주출판도시의 자랑스러운 시민이 되는 것을 또다시 무기한 연기해야겠지만, 20세기의 전모를 헤아릴 수 있는 DNA를 추출해 놓았다는 자부심만큼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사람의 인생을 한 편의 연극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고, 유달리 한이 많은 사람은 자기가 고생한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책 한 권 분량은 족히 될 것이라고도 한다. 폭염 속에 15권의 구술자서전을 한꺼번에 진행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지만, 편집과 제작을 진행하면서 깨달은 바는 ‘사람의 인생은 누구나 다 한 권의 책’이라는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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